이 의장·황 부의장·민주당/사회 둘러싼 “3각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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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 “황 부의장에 사회봉 맡기면 안된다” 사전 압력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이 벌어진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만섭 국회의장은 단 한시도 사회석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의장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뒷배경에는 지난 정기국회 날치기파동이 초래한 이 의장·황낙주부의장·민주당 원내지도부간의 치열한 「삼각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음을 아는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치러지는 장시간의 회의탓에 이 의장은 대개 휴식차 황 부의장(민자) 또는 황 부의장이 없는 경우 허경만부의장(민주)에게 의사봉을 맡기던게 이전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회부터는 상황이 판이하게 변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이번 임시국회 직전 『어떤 경우라도 날치기의 주역인 황 부의장이 사회석에 앉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이원형 부총무를 통해 민자당측과 이 의장에게 전달했다.
이 때문인듯 이 의장은 이날 전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용변이라도 보기 위해 자리를 뜰라치면 부의장에게 사회를 맡겨야 하는데 황 부의장이 수석부의장인고로 황 부의장에게 우선적으로 맡겨야 한다. 이를 알고 있는 황낙주부의장이 의석을 비우지 않고 버텼기 때문에 민주당 부의장에게 사회봉을 넘길 수 없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이 의장은 울며 겨자먹기로 사회를 계속 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이만섭의장이 끝가지 날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총대를 멜 수 밖에 없었던 황 부의장은 날치기도 실패하고 신체적 상처도 입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황 부의장은 그 이후 이 의장을 사석에서 『기회주의자』로까지 비난하며 불만을 드러냈고 최근에는 차기의장으로 밀어달라고 야당 의원에게까지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같으면 바로 정부 답변으로 넘어갔을 상황에서도 이 의장은 정회를 선언한뒤 화장실을 찾았다. 62세의 고령인 이 의장은 피곤한 기색이 완연한채 몸을 뒤척였으나 황 부의장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피곤을 참지 못한 이 의장은 드디어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고 의사국장이 업무보고하는 척하면서 잠을 깨우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오후 5시를 넘어 민주당 허경만부의장이 잠시 의석을 비우자 황 부의장도 때를 놓칠세라 자리를 떠 휴식을 취했으나 이날 이 의장은 조금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마치 TV 코미디프로의 「모의국회」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 이날의 해프닝은 그러나 어쩐지 씁쓸한 인상만을 남겼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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