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진의 로봇 이야기] 세계의 로봇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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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27면

로봇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인들은 로봇이라는 단어를 보고 ‘터미네이터’를 연상한다. 화성탐사로봇이나 우주왕복선용 로봇 팔이나 전쟁용 정찰로봇(사진2)과 무인비행로봇 등도 떠올린다. 가정용 바닥청소로봇이나 외과수술로봇도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상용화됐다. 미국 로봇의 공통점은 당장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제 실용화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로봇보다는 개발 목표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로봇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기초과학의 저변이 튼튼한 미국은 로봇의 지능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인들에게 로봇은 사람을 닮은 존재다. 아톰이 대표적인데 어릴 적부터 만화에 익숙해서인지 인간형 로봇(사진3) 투자에 인색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봇에 호의적이다. 전 세계 로봇의 45%가 일본에서 가동되고 거의 모든 일본 가전메이커가 미래형 로봇 개발에 뛰어들었다. 일본인들은 ‘재미있는 로봇’을 좋아한다. 새로 구입한 가전제품의 설명서를 뒤적이며 신기한 기능을 시험해 보면서 즐기는 일본인답다. 어떤 개발자는 ‘2050년에 로봇축구팀이 월드컵대회 우승팀을 격파하도록 하겠다’는 다소 엉뚱한 목표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일본은 초소형 로봇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초소형 로봇 투자는 어떻게 보면 생산성이 매우 낮다. 초소형 로봇에 들어가는 부품은 수백 개를 만들어도 쓸 만한 것 하나가 나오기 힘들다. 그런데도 일본은 많은 재료를 버리더라도 단 한 개의 로봇만 성공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왔다. 미국이라면 이런 식의 투자를 기피할 것이다.

필자는 일본에서 열리는 로봇 관련 학술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한 적이 있다. 회의 때마다 발표자들의 기발한 착상에 놀라곤 한다. 더 놀라운 것은 학자가 아닌 일반 발명가들이 독특한 로봇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학술회의는 분위기가 다르다. 체계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완성도가 높은 연구성과를 중요시한다.

독일인들은 자동차 공장 등 생산현장에서 쓰이는 산업용 로봇을 중시한다. 산업용 로봇(사진1)은 단순한 생산설비이자 도구이기 때문에 일상생활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튼튼하고 정교한 로봇 팔 메커니즘 기술이나 정밀한 센서와 같은 부품소재 기술 등은 앞서 있지만 로봇의 종류가 적고 응용범위도 좁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로봇산업은 미국과 일본·독일의 특성을 골고루 지니고 있다. 또 정부 주도로 로봇산업을 육성하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로봇 보유 대수나 국제학술 논문 수 등에서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권 그룹에 속한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이 우리와 같은 그룹에 들어 있다. 우리는 휴대전화나 자동차 산업을 성공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부품소재 등의 기반 기술이 열악한 상황에서 뒤늦게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일궈냈다.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기술개발 노력이 어우러져 로봇 분야에서도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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