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촌주민 판자촌 신세 40여년만에 청산-행정규제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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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땅에 발을 디딘후 이같이 기쁜 일은 처음이지요.』 부산시중구영주1동 화교 집단거주지인 충효촌 주민들은 요즘 소풍가는아이들처럼 마냥 기쁨에 겨워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국땅에서 40여년간 살아온 판자촌 신세에서 이제 벗어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오는 5월초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판자촌을 뜯어내고 이곳에 20평규모의 아담한 아파트를 짓게 된 것이다.
일제때 건너온 화교 1세대를 비롯해 모두 62가구 2백여명의화교들이 모여 살고 있는 화교마을은 전체 면적이 9백36평에 불과한 도심속의 슬럼지역.
단층 또는 2층으로 된 20여채의 목조건물에 한채에 2~5가구가 옹기종기모여 5~6평 공간에서「벌집생활」을 해오고 있다.
큰 기대속에 정착한 화교들을 이같이 오랜 세월동안 서글픈 생활을 안겨줬던 것은 행정규제와 소유권 문제.
80년대 초반부터 이곳을 본격 개발하려 했으나 마을 전체가 수십년째 공원부지로 묶인 탓에 부서져가는 대문 한짝 제대로 손댈수 없었다.
6共들어 공원부지에서는 해제됐지만 화교마을 부지에 대한 소유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들의「脫판자촌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이곳은 일제때인 45년초 공동묘지로 쓰기 위해 당시 부산화교협회장 楊牟尾씨 명의로 공동구입한 곳.
그러나 6.25전쟁이 터지자 피난온 화교들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해 정착,오늘에 이르렀다.
화교들은 소유권문제 해결을 위해 70년대후반 행방불명된 楊씨를 80년대 초반부터 백방으로 찾아나섰으나 허사였다.
이 때문에 이 지역주변 전체가 91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이곳은 소유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제외되기도 했다.
화교들은 이에따라 楊씨가 사망한 것으로 간주,이곳 땅을 현재살고 있는 62가구 주민들의 공동소유로 돌려달라는 소송을 93년1월 부산지법에 낸뒤 이달초 승소판결을 받아 마지막 장애를 제거하게 된 것.
주민들은 이곳에 20평형 규모의 아파트 90가구를 5월초부터지어 62가구는 자신들이 살고 나머지는 일반인들에게 분양,공사비에 보탤 계획이다.
[釜山=鄭容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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