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열전>1.내가 겪은 金부총리-최동규 前기획원 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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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가 60년부터 72년 작고하기까지 모셨던 故 金鶴烈 부총리처럼 경제부처를 장악한 부총리도 드물다.「경제기획원 장관은 경제의 기획.운영에 관하여 관계 각부를 총괄 조정한다」는 직권적지도력은 어느 부총리도 향유한 법적 권한이다.그 러나 金부총리는 여기에 더하여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요인을 엄호 또는 구사함으로써 경제부처를 보다 강력히 장악할 수 있었다.
첫째는 朴正熙대통령의 後光的 영도력 덕택이다.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서 부총리로 임명되었다는 경로가 朴대통령의 후광을 받는데 충분했다.그는「朴正熙 경제정책」의 취향및 운영감각을 누구보다 더 잘 알수 있었으며 어느 다른 장관도 여기에 도전할 수 없었다.도전할 수 있는 접근로인 鄭韶永 후임 경제수석비서관과도밀월 관계를 유지했다.경제장관회의때 어느 장관이 대통령의 하명과제라고 설명했을때 異見이 있으면 金부총리는 회의도중 朴대통령에게 전화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 로 신임을 얻고 있었다.
둘째는 직권적 리더십을 하향적으로 운영한 점이다.각 부처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예산의 배분 특히 예비비의 배정,외자도입,직제 확대를 통한 정원 증가및 정부의 인허가 요금 결정에 부총리의 先決을 받도록했다.하향식 의사결정 체계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의사결정 체계보다 부총리로서 다른 부처장관을 끌어들이는데 영향력을 더욱 발휘했다.관계부처와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과제가 있을 때는 필요에 따라 朴대통령에게 기습적으로 보고해 미리 재가를 얻음으로써 선제공 격의 효력을 보았다.72년 예산안 편성때 세수 규모에 대해서는 재무부와,율곡사업비 규모에 대해서는 국방부와 각각 현격한 의견 차가 있었다.金부총리는 朴대통령에 대한 보고일정을 원래보다 10일 단축해 휴일에 전격 재가를 받았다.
金부총리가 중요 현안을 하향식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정책과 행정에 전문성이 갖추어져 있고 오랜 관료적 경험으로 파급되는 효과와 범위를 계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金부총리의 공격적 개성이 다른 공무원의 오금을 못펴도록 지배했다.
명석한 두뇌에서 산출하는 정확한 논리적 사고와 수치에 대한 뛰어난 기억력,그리고 예리한 통찰력이 金부총리의 공격적 개성을무기화했다.결재문서나 브리핑 차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허구와 수치의 오류가 발견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 지 않고 독설적인 공격을 하곤했다.그러나 이같은 독설은 稚氣性 유머가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듣는 제3자는 속으로 웃게 된다.
학처럼 장수를 못 하신 것이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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