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토박이의 황량한 명절-문예중앙 특집 나의고향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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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서울은 텅 빈다.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와 일가를 이뤘거나 정착하려 발버둥치는 시민들이 전라도로, 경상도로 빠져나간 서울은 썰렁하다.고속도로를 꽉 메운채귀향하는 차량행렬을 안방 TV를 통해 바라보는 서울토박이들의 마음 또한 썰렁하다.
타지 출신들은 의당 제 고향땅에 마음이 가있고,토박이들은 상대적인 고향 상실감 혹은 박탈감 때문에 심정적으로도 서울은 이래저래 텅빈 도시가 돼버린다.
정도 6백년.시당국이「서울토박이 찾기」운동을 벌여야 할만큼 정서적으로 황폐화된 서울을 근간『문예중앙』봄호는 특집「나의 고향 서울」을 통해 들여다 보았다.
『고향은 자애롭고 따스하고 부드럽고 그윽한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곳이리라.힘들게 가는 곳이지만 마치 순례자가 성지에 다녀온 것처럼 그동안 속진에 더럽혀진 때를 말끔히 씻고 새롭게 거룩한 힘을 얻어 돌아오는 것을 볼때 나는 그들이 한량없이 부러운 것이다.』 소설가 김용성씨가 귀성행렬을 보며 느낀 고향의 의미와 부러움이다.金씨는『서울 사람들은 어쩌면 고향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고 씁쓰레해한다.여의도의 은빛 모래톱과 푸른강물 속을 텀벙거리며 송사리를 쫓을수 있었던 무공해의 도시 서울.그러나 6.25는 서울 사람들에게 그런 동심도,고향도 앗아가 버렸다고 한탄한다.
『6.25와 9.28수복,1.4후퇴와 그해 봄의 탈환등 두차례에 걸친 공방으로 서울은 쑥대밭이 됐다.』 그렇게 겁탈당한 고향 서울의 뻥뚫린 구멍으로 이번엔 타지 사람들이 몰려 들어 오늘의 서울을 세웠다.이제 서울에서 밀려나 인접도시 철산에 둥지를 틀고 있는 金씨는『경상도에서,전라도에서 꾸역꾸역 몰려든 사람들에게 고향을 빼앗겨 버렸다 』고 항변하고 있다.
『그 옛날 강을 건너 영등포까지는 전차가 가지 않았지.그래서마포종점.밤깊은 마포종점을 부르던 은방울자매는 30년 뒤에도 여전히 공덕동 허름하고 지독한 스탠드바에서 그 노래를 부르고』. 시인 김정환씨는 그악스런 타지 사람들에게 밀린 처량한 서울토박이의 신세를 흘러간 가수에 빗대고 있다.『우리는 고향의 모습을,단지 전설로만 지녔을 뿐인가』라고 묻는 김정환씨는『6백년동안의 서울은 6백년 동안 사라진 모습』이라며 토 박이의 허허로운 상실감을 미학으로 자위하고 있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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