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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입법 가속화 전망/돈봉투사건후의 정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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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권도 바뀌어야” 자성목소리 높아/“구태엔 강력징벌” 조직정비도 본격화
국회 노동위 돈봉투사건은 정치권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비록 의원들이 칼날을 피하게 돼 한편으론 다행스러워하지만 시종 눈살을 찌푸린채 지켜본 국민들에게 더욱 깊은 정치혐오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박재규 전 의원에 대한 정치공작 폭로사건과 외부기관의 지원을 받은 의원 외유건까지 겹쳐 의원들의 자탄·자성의 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7일 오전 김영삼대통령의 서울시청 연두순시에 배석한 서울출신 의원들은 김 대통령이 입을 열자마자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하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은 직감적으로 김 대통령이 돈봉투사건 때문에 몹시 마음이 상해있구나 하고 느꼈다. 차가운 기류까지도 감지될 정도여서 정치권에 유형무형의 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청와대측의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이번 돈봉투사건은 여야의 정치개혁입법 협상에 적지 않은 압력수단이 될 것 같다. 여든 야든 정치개혁입법 작업을 게을리 하거나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려할 경우 여론의 비판을 배겨날 수 없게 돼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민자당은 통합선거법안 등 남은 정치관계법 처리와 관련,2일 임시국회에서 「최대한 노력을 경주」한다는게 당초 입장이었으나 돈봉투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반드시 관철」로 바뀌었다. 따라서 임시국회가 개회되자마자 정치특위를 구성하여 현재 민자·민주 양당 6인위가 진행중인 협상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여권의 고위소식통은 『김 대통령은 올해 경제활성화와 국제화 대비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 만큼 정치개혁작업은 정치권이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바란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개혁은 커녕 정치권이 다른 부문의 진로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개혁입법 마무리 관철 방침도 이같은 기류에서 취해진 조치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정치관계법이 정비된 뒤에도 그에 따른 정치행태의 실질적인 개혁추진 역시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자당 기구와 조직에 대한 전면 정비작업이 곧바로 착수될 전망이며 그와함께 구태가 재연될 경우 본보기 차원에서의 가차없는 징벌이 뒤따를 것으로 짐작된다.
○…여야 정치권에서 자탄의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민자당의 문정수 사무총장은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로 정치권이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해야 함에도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들로 인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개탄한다』고 말했다. 지역구 출신 한 민자당 의원도 『검찰 수사결과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이를 액면대로 믿어줄 국민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7일의 국회 노동위 전체회의에서 박제상·이호정의원(민자) 등은 『지역구민은 물론 아들까지 돈을 받았느냐고 물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면서 『정치권 전체의 신뢰에 먹칠을 한 언행을 반성해야 한다』고 이를 폭로한 김말룡의원에게 화풀이를 했다.
민주당의 박계동의원은 『이번 사건은 국회 저변에 깔려있는 부조리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과거 잘못된 관행들을 뿌리뽑아야만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허남진·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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