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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투자사 CJ엔터테인먼트 박동호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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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는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면 안 된다. 역시 개인 기업 형태가 맞는 것 같다."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은 최근 이렇게 말했다."영화는 워낙 기복이 심하다.'실미도'처럼 잘 되면 한번에 수백억원을 벌 수도 있지만 망하면 수십억원을 한 자리에서 까먹는다.

그런데 주주가 많고 기업형태가 크면 분기별, 혹은 1년 단위로 일반 상품의 매출을 따지듯이 성과를 매기려 든다. 수시로 실적표를 들이대며 닦달하니 창의성과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다. 뜻맞는 이들이 신명나서 일하고, 성과가 났을 때 주주들 눈치 안 보고 보너스 넉넉히 주면서 기를 살려주기에도 역시 과거 충무로를 주도하던 개인 기업 형태가 맞다."

그러나 어쩌랴, 판이 바뀌고 있는 것을. '토착 영화 자본'이라는 개인 주머니가 감당하기엔 한국 영화 시장이 엄청나게 비대해져 버렸다.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업계에선 유일하게 단독으로 코스닥에 등록한 회사다. 제일제당의 한 사업부로 있다가 2000년 독립한 후 음반.공연 등으로도 손을 뻗치고 있다. 멀티플렉스 붐을 주도한 극장 경영체인인 CGV도 CJ계열이다. 극장 경영과 제작.투자를 겸하고 있어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계를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

지난 1일부터 CGV와 함께 CJ엔터테인먼트 사령탑도 맡게 된 박동호(47)대표를 만났다. 제일제당의 육가공 사업부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다 영화계로 발을 들인 박대표는 첫 느낌부터 확실히 '토종 영화인'들과 달랐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는 IQ(지능지수)와 함께 EQ(감성지수)가 중요합니다.창의력은 감성 곱하기 상상력 곱하기 실천력입니다.감성 경영은 독서 경영에서 나옵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경영학 개론 강의하듯 말을 풀어 놓았다. 새로 지휘봉을 잡아 그가 처음 한 일은 직원들의 '독후감 쓰기'였다.

"많은 경영학자가 주장하듯 상상력도, 창의력도 지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두 달에 한 권씩 지정된 책을 읽고 게시판에 의무적으로 감상문을 올리도록 했다. 이번 달엔 조직관리를 다룬 '겅호'와 마케팅 기법에 관한 책인 '코카콜라는 어떻게 산타에게 빨간 옷을 입혔는가'를 권했다.

"대기업이 영화 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파트에는 거기에 맞도록 자유롭고 분방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됩니다. 삼성과 대우가 90년대 초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외환위기를 전후해 철수했지요. 그러나 이를 실패로 보면 안 됩니다. 그 때 일했던 이들이 지금 영화계 곳곳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대기업 조직이 맞다는 방증 아닐까요."

메가박스.롯데 등도 멀티플렉스 사업에 적극적이어서 조만간 극장이 포화상태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일축했다. "90년대 이후 관객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극장 간다고 하면 영화만 보는 게 아닙니다.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하고 친구도 만나는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양질의 서비스만 유지한다면 관객은 계속 늘어날 겁니다."

시종 미리 준비한 자료를 훑어보며 원론에 충실한 답변을 내놓은 박대표. 그에게선 강우석 감독처럼, 변덕 심한 영화계에서 숱한 파도를 헤치며 생존한 자의 배포나 결단력을 읽어내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영화산업은 직감보다는 '서류'를 중시하는 박대표식 스타일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가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건 이 때문이다.

글=이영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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