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세계축구다>6.뼈깎는 힘든 경기 헝그리정신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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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엔조 시포,그는 벨기에의 게임메이커다.
1984년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유럽선수권대회에서 18세의 어린나이로 처음 대표선수가 되었다.원래 그의 아버지는 시실리 출신 이탈리아인이었다.
아버지가 직업을 찾아 벨기에에 오게 되었고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면서 폐병을 앓기도 했던 아주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시포가 18세때 벨기에 축구협회는 그에게 벨기에 국적을 취득케해 재빨리 대표선수로 등록했다.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86년 월드컵을 앞두고 가슴을 쳤었다.
그는 지금 모나코에서 뛰고있다.나는 그를 기억할 때마다 떠오르는 신문기사가 있다.
8년전 월드컵을 앞두고 벨기에 신문에『한낱 광부에 불과했던 그의 아버지는 지금 안더레흐트 구장의 화려하게 꾸민 VIP룸을드나드는 재미로 살고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다분히 빈정거림이 들어있었고 시실리인을 무시하는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축구스타들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류의 기사는 자주 실리는 편이다.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스타플레이어들에게는 더욱 심하다.
지난 월드컵대회때 독일팀 골게터였던 루디 러는 그의 아버지가프랑크푸르트 근교 오펜바흐에 있는 작은 성당의 청소부였다.그는브레멘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분데스리가의 득점왕에 오르고 또 대표선수가 되었는데 그 역시 지금은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뛰고있지만 88년 그는 이탈리아의 AS로마팀에서 활약했다.
로마는 바티칸이 있는 곳이고 교황이 있는 곳이다.
그는 거기서 교황을 알현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매스컴은 시골교회의 청소부 아버지와 교황의 손을 잡는 아들의 모습을 비교하며다분히 자극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었다.
축구선수는 대부분 가난하다.그러나 지도자 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헝그리정신 없이는 축구를 할수없다고 말하고 싶다.
축구는 그만큼 어려운 운동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 스스로가 인내할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인내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축구는 가난한 청소년들에게는 꿈,그 자체다.
매스컴의 빈정거리는 기사도 그들에게는「우리의 미래」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세탁소에서 이불빨래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들이 슈퍼스타가 되어 수영장.경마장.헬스클럽을 갖춘 집에서 개인 마사지사에 경호원까지 두고 사는 모습은 분명 희망이 없는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실현가능한 꿈으로 보여질 것이다.
자기 신발,자기 옷도 없이 길거리에서 자란 마라도나가 아무리차려입어도 아직 그 티를 벗지 못한 가족들을 전세비행기로 실어나를수 있는 길,그것이 축구를 통해 가능하다고 가난한 청소년들이 믿게 된다면 매스컴의 횡포도,그들의 잔인함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축구는 근육속의 기름을 짜내는 힘든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명한 축구선수는 가난했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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