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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중독/공해현장 고발:4(우리 환경을 살리자: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매년 2만t 살포… 독을 먹는 셈/중독발생률 미의 30배/정부차원 대책은 전무
먹거리 공해­. 「증산입국」의 표어아래 보릿고개를 떨쳐보자며 마구잡이로 뿌린 농약의 앙금들이 우리를 몸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20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몸속에 들어온 농약만 다 모아놓아도 1개 소대 병력의 생명을 좌우할 양은 될겝니다.』
농약의 치사량은 어림잡아 농약의 반병정도. 농약을 뿌리면서 살포량의 0.1%씩만 들이마셨다고 해도 그동안 쓴 농약량을 따져보면 그 정도는 될 것이라는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김기근씨(43)의 표정이 의외로 덤덤하다.
매년 전국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에 뿌려지는 농약의 양은 유효성분기준 2만여t.
『논에 제초제농약을 뿌리고 나서 잠시후 갑자기 토하고 속이 뒤틀리면서 골치가 아프고 어지러운데다 근육경력이 나서 몸을 전혀 가눌 수 없더라구요. 숨이 차다가 곧 혼수상태에 빠져 더이상 기억도 없습니다.』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 안필봉씨(38)는 생각하기도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3년전의 농약중독 당시를 증언한다.
UR 쌀시장 개방후 농촌살리기 종합대책·농촌세 신설 등 정책의 우선순위가 농촌인양 법석을 떨지만 정작 농촌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허상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농약 중독 전문치료기관은 불구하고 실태조사 조차 안돼있다. 대책이라면 가격의 반값으로 공급해주는 농약과 함께 이장집이나 농협에서 나눠주는 농약해독제가 고작.
이같은 현실을 보다못해 농촌의료봉사활동을 펴던 안성진료회와 지역농민들이 함께 모금해 92년 11월에 세운 안성한의원은 전국 유일의 농약전민 치료병원. 올 5월이면 의사도 합류,양·한방이 구비된 안성 농민의원이 문을 연다. 『어깨걸림·요통·신경통 등 신경계 질환,전신무력감,피로감,빈혈,만성기관지염 등 농약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만성환자가 전체환자의 60%쯤 됩니다. 비닐하우스 농민중에는 일년내내 감기를 앓는 사람도 많지요.』
안성한의원 최정호원장(32)은 농번기에는 하루 10명 이상이 농약관련증세로 찾아오며 농한기인 지금도 병상 6개는 만성증상 때문에 침을 맞는 사람들로 늘 차 있다고 했다.
농민회에서 조사해보니 3백평 땅에 농사 지을 때 농약주는 시간이 벼는 45시간,고추 1백43시간 등으로 나타났고 종자소독부터 수확 때까지 10∼15회 정도를 뿌리고 있었다. 일본 농촌에서는 농약을 2∼4회 정도 뿌리는데 비해 우리는 그보다 3∼4배를 더 뿌리고 있는 셈이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정용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농약살포중 생기는 농약중독 발생률은 10만명당 8.5명꼴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아 비교해서 30배가 넘고 있다.
농촌의 농약오염 대책은 비단 농민뿐 아니라 전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정 교수팀이 경북지역을 대상으로 유기염소계 농약 하루 섭취량을 조사한 결과 도시지역 주민들의 하루 섭취량이 50㎍으로 농촌 주민들보다 3.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유기염소계 농약은 인체의 지방질에 쉽게 축적되는데 도시주민들의 육류섭취량이 계속 늘고 있고 체지방도 많아지고 있으므로 위험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도 양이면 당장 몸에 이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해도 농약이 몸에 오랫동안 게속 축적되면서 개인에 따라 심장·호흡기계·내분비계 이상 등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농약관리수준은 미비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체독성이 지나치다고 사용규제를 권한 고독성농약 1백27종중 28종이 국내에서는 아직도 버젓이 살포되고 있다. 또 유엔환경사업부가 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고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독성농약 2백53종중 48종을 계속 쓰고 있다. 보사부는 88년 38종의 농약에 대한 농산물 잔류량 기준치를 정했고 95년 1월3일부터는 대상을 1백5종으로 확대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농약을 덜 쓰도록 만들고 그래도 안될 때 기준을 엄격히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경기도 안성 고삼단위농협 조합장 조현선씨(38)는 『다소 수확량이 줄고 생산비가 더 들어도 농약을 안쓰는 유기농법을 하고 싶은 농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기술지도나 생산비 지원,판로개척 등 유기농법의 확산을 위한 정부지원책이 너무 없어 문제라는 것이다.
농약의 독성을 흠뻑 머금고 있는 토양,거기에 심어 생산되는 먹거리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다고 해도 도약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배인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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