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잔치」 벗어야할 업무보고/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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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후 처음으로 실시한 연두 업무보고 청취가 28일 사실상 끝났다. 보고부처는 모두 27개(31일 평통보고 포함)다.
김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강행군을 했다. 과거엔 통상 하루에 한곳씩이었는데 이번엔 두곳이었다. 그래서 전에는 2개월씩 걸리던 기간이 많이 줄었다.
김 대통령은 또 장관의 업무보고를 들은뒤 바로 실·국장들과 20∼30분간 실질적인 1문1답을 하는 등 연두 업무보고의 내실화에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첫번째 연두 업무보고에도 정부관리들은 유전병처럼 갖고 있는 부실과 과대포장,졸속의 증상들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이점에서는 과거보다 별로 나아진게 없다는 지적이다.
많은 부처가 정책개발에 주력했지만 실제적인 내용보다 한건주의와 백화점 진열식 같은 겉모양에 신경쓴 흔적도 적잖게 드러났다.
다른부처와 제대로 협의도 않고 자기네 잇속만 생각해 내놓은 정책들도 있다.
환경처가 보고한 환경세·환경복권같은 물건들은 경제기획원·재무부 등과의 「협의공정」을 건너뛰고 나왔다가 벽에 부닥쳤다. 곧 입법하기로 된 농어촌특별세와 관련,지금까지 『세원을 바꾼다』 『당정협의를 새로 한다』는 등 법석을 떨고 있는게 단적인 예다.
공무원들이 애용하는 미사여구 포장도 여전했다. 실·국장중에는 모처럼의 대통령 질문을 이용해 대통령 찬양이나 아부에 애쓴 이들도 있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국가경쟁력 제고를 외쳤고 「새 직장 만들기운동」 같은 언어의 인플레이션도 등장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연두보고가 보고로 그치지 않고 실사구시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청와대는 내년부터 부처별이 아니라 주요 국정과제별로 여러부처가 함께 보고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총리실은 보고내용을 실천하는지 감시하는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청와대와 총리실도 각 부처 업무보고가 형식에 흐르고 미덥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증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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