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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사건」 관련 금융기관 문책인사 어떻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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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자율」 의식 “돌려치기 작전”/간여인상 피하며 「괘씸죄」 징계/자진사퇴 형식으로 조기 매듭/“일벌백계만으론 실명제 정착안돼” 비판도
새정부 출범이후 두번째의 금융계 「인사한파」는 결구 금융실명제 위반에서 비롯됐다.
「대화」산업 장영자여인이 일으켜놓은 불씨가 지난 82년 이·장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은행장급 경질」이라는 금융계의 「대화」로까지 번진 것이다.
다만 82년 당시에는 대기업 부도로 인한 경제의 충격이 워낙 컸고,대통령의 친인척과 관련되는 부분이 있어 「괘씸죄」가 여러 사람에게 번졌던 반면 이번에는 실명제와 관련된 부분이 「괘씸죄」의 「촉매」가 되었다는 점이 다르면 다르다.
2개 시중은행의 행장과 전무가 옷벗는 것을 두고 「사정」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으나 그간의 과정을 보면 이번 인사조치는 「준사정」급 회오리라 하기에 충분하다.
새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4월에 불어닥친 1차 사정바람으로 5명의 은행장이 물러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씨사건에 연루된 금융기관 점포에서 장씨가 소개한 사채업자들의 예금을 받아주며 실명제를 위반함으로써 이를테면 「실명죄」에 걸려 물러나는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반드시 정착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비추어보면 이번 일로 정부가 손대기 이전에 관련 은행장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자진사퇴」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관련 은행장들이 먼저 알아서 물러나려했다는 흔적은 없고 결국 정부가 나서서 자진사퇴를 종용하는,별로 「아름답지 못한」 형식이 되어 버렸다.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진정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또 꼭 정부가 「자율인사」의 원칙에 손상주면서 나서야만 하는 것인지,모두 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지 않은 상태에서 비록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투명한 은행인사」부터 외치고 나왔던 그간 정부의 은행인사원칙이 이럴 때 아주 고약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재무부장관은 은행장이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해임권고할 수 있다.
그러나 실명제를 위반했다고해서 은행장을 문책할 수 있다는 조항은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명령 어디에도 없다.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명령은 이번 사건에서와 같이 실명거래를 위반한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대해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을 뿐이다.
물론 실명제를 어긴 금융기관 직원들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나쁜 것이다. 하지만 금융계의 현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일 경우 많은 은행원들이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은 실명제 시행 초기부터 여러차례 나왔던 것이었다.
실명제를 정착시켜야 하는 당위성 못지 않게 우리 금융계의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은행감독원이나 사정당국이 모든 금융기관 점포에 대해 실명제 이행 실태 특검을 나가 뒤지기 시작하면 자칫 거의 모든 은행장이 옷벗어야 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벌써 실명제 이후 지난해말까지 은행감독원에 크고 작은 실명제 위반으로 적발된 경우가 18개 은행에 이르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해온 금융관행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무튼 이번 인사조치로 금융계는 오는 2월 주총을 전후해 큰 인사회오리에 휩싸이게 됐다.
특히 동화은행의 경우 현 선우윤행장은 지난해 9월18일 행장에 선임돼 이제 겨우 넉달동안 일한 상태다. 또 송한청전무는 지난해 은행장 추천위에서 행장후보로 선임됐다가 감독당국에 의해 거부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은행은 행장이 물러날 경우 임원이 된지 얼마 안된 사람이 행장직무대행을 맡거나,행장으로 외부인사를 모셔와야 할지도 모른다.
서울신탁은행의 경우 지난해 3월18일 김준협씨가 물러난뒤 행장직무대행을 하던 김영석전무가 5월27일 이어받았는데 행장추천위원회에서 은행장을 뽑는 새 제도에 따라 행장이 됐다.
결국 문제는 아무리 자율을 외쳐보지만 현재와 같이 은행의 주인이 없는 상태에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교훈은 금융실명제가 결코 하루아침에 정착될 일이 아니며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일만이 실명제 정착의 「외길」은 분명히 아니라는 것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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