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화 집착 「변화」에 둔감/「큰손 장영자」 왜 실패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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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실 모른채 무리한 사업확장 화근/부동산 경기침체·실명제로 침몰
92년 3월 가석방. 93년 12월 연쇄부도 끝에 잠적.
재기를 꿈꾸며 1년9개월동안 「활약(?)」하던 장영자씨가 끝내 「잡범」 수준으로 전락했다.
금융계는 장씨가 10년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세상 변한 것을 모른 것 같다고 지적한다. 「아 옛날이여」식으로 무리하게 과거의 영화를 돌이켜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장씨의 행보에 발목을 잡은 것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금융실명제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장씨는 비록 대부분 가압류로 묶여있긴 하지만 제주도 성읍목장,부산 범일동 땅 등 곳곳에 있는 2천억원대의 부동산을 바탕으로 멋지게 재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동산 부동산은 토지공개념 도입에 따른 종합토지세,토지초과이득세,개발부담금 부과와 함께 실명제가 실시되면서 토지거래 허가지역 확대 등으로 값이 떨어짐은 물론 거래가 한산해졌다. 따라서 부동산을 토대로 돈을 만들어보려는 구상은 처음부터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실명제는 장씨의 자금운용을 제약했다. 아직도 일부 활동하고 있지만 장씨의 형편이 극도로 악화된 지난해 10∼11월은 실명제가 시행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서 금융시장이 크게 위축돼 있었다.
따라서 자기 돈이 별로 없어 남의 돈을 돌려서 일을 해야 되는 장씨로선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예년 같았으면 1년짜리 어음을 끊어줘도 될 것을 한달 또는 두달짜리로 해주었으며,짧게 돌아가는 자금순환 고리속에서 견뎌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서울신탁은행은 압구정지점장,동화은행 삼성동출장소장 등을 깊숙이 끌어들이긴 했지만,아무래도 그전처럼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변칙적으로 자금을 돌리고 만들어내는게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결국 장씨는 주거래은행의 지점장 김칠성씨,같은 고향(목표)출신인데다 인척관계로 알려진 동화은행 장근복 전 삼성동출장소장을 끌어들이는 정도였다.
기업을 끌어들이는데도 공영토건,일신제강 등 그전 사고때와 같이 큰 회사를 끌어들이진 못했다. 그래서 폐업한 유평상사를 인수했으며 포스 시스팀,대명산업을 끌어들였다.
남편 이철희씨가 대표로 있는 대화산업이나 남편 친구 최영희씨를 대표로 내세운 유평상사,사위 김주승씨가 운영하는 이벤트 꼬레 등은 규모가 작고 신용도 취약해 자체 능력으로 은행에서 돈을 끌어들이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장씨는 왕년의 「어음 전문가」 실력을 발휘,어음을 발행해 은행의 보증을 받아 할인하는 방법을 썼으나 이 어음 발행의 주체인 기업의 규모나 실적이 작아 한계가 나타났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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