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물가>4.유통구조 개선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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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개방과 경쟁이 물가 잡기의「큰 틀」이라면 유통구조 개선은 비록「작은 틀」이지만 이것 없이는 개방과 경쟁도 효험을 못보는 물가의「하부구조」라고 할 수 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 자리 잡은 디스카운트스토어 E-마트를 한번 보자.이 곳은 요즘 하루 평균 1만명의 고객으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멀리는 광명시에서,가깝게는 의정부시에서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회사측은 고객들에게 휴일보다「한산한」 평일을 이용해 달라고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있다.
E-마트가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1월.안내해주는 판매 사원도 없고 살 물건을 찾으려면 상자 속을 뒤져야 하는데다 배달도해주지않아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데도 이처럼 단시일내에 고객들의 호응을 얻게 된 이유는 단 하나,백화점 .편의점.구멍가게와 비교해도 값이 아주 싸기 때문이다.
이 회사 呂漢壽 과장(39)은『품목에 따라 20~50%씩 저렴하게 팔기 때문에 심지어 인근 슈퍼마킷에서도 장을 보러 오고있다』면서『특히 주부들에게는 식.음료가 인기가 있어 라면은 하루 평균 2백 박스,우유(1천㎖짜리)는 6백개씩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마트의 성공은 유통구조의 개선이 물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를 보여주는 實例다.
E-마트와 같은 판매점이 전국 곳곳에 있다면 광명시에 사는 주부가 지하철을 1시간 반씩이나 타고 창동까지 와 물건을 사가는 불편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품질의 상품을 20~50%씩 싸게 살 수 있어 그만큼 물가를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나온다. 경제기획원 姜郡生 유통소비과장은『우리나라는 사회간접자본(SOC)시설의 미비로 인한 物流비용의 부담과 유통산업의 낙후로 유통 마진율이 다른나라 보다 높아 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원이 조사한 품목별 유통마진율(부가가치세 포함,공장도가격기준)을 보면 家電제품과 酒類가 평균 25%,의류와 製藥은 30%에 달하고 있으며 무.배추등 농산물 일부 품목은 유통마진율이 産地가격의 4~5배나 된다.예컨대 배추는 産 地에서 포기당3백원에 사서 소비자들에게 팔 때는 1천2백~1천5백원을 받고있다. 농림수산부 盧京相 유통과장은『농산물은 다수의 영세한 생산자와 다수의 분산된 소비자를 연결해야하기 때문에 유통단계가 공산품에 비해 복잡하며 이에 따라 유통마진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이같은 복잡한 유통구조를 악용해 매점매석등을 하는 중간상인들의 농간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최근에도 중간상인들이 유통시장에 나와있는 마늘.양파를 매점매석,값이 치솟고 결국은 정부가「긴급 수입」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는 소동을 빚었다.
이같은 일을 막고 물가를 낮추기 위한 해답은 아주 간단한 곳에 있다.바로 유통구조의 혁신인 것이다.그러나 행정규제와 유통업에 대한 인식 부족이 그처럼 간단하고 당연한 해법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예컨대 농수산물의 유통에 대자본이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간의 우리「情緖」였다.
업계 관계자들은『프랑스의 카르프르그룹이 4백80억원의 막대한자본금을들여 우리나라에 세우려는 하이퍼마킷이 바로 E-마트와 유사한 유렵형 할인매장』이라면서『이러다간 유통산업의 물가안정 기능조차 외국기업에 떠맡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 했다.
〈韓鍾范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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