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와 국제화 전략/김중웅(시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가장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 국제화인가 싶다. 그러나 국제화·개방화·세계화·자유화라는 말이 너무 혼동 남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정부의 국제화정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새로운 국제여건 변화의 대응에 정신적 혼란을 겪기도 한다.
○경쟁에 낙오되는 함정
도대체 국제화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지,그리고 국제화하면 무조건 국가에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인지,또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 하는 의문과 함께 국민은 급변하는 세계환경변화와 그 적응에 당황해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국제화라고 하는 것은 국가간에 폐쇄적인 관계가 아닌 개방적인 관계에서 국제적 가치규범(International Rule of Game)을 준수하고 상호협력함으로써 세계와 더불어 국가의 번영과 국민생활의 풍요로움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국내 쌀시장 개방이 강요되면서 국제화를 개방화 또는 자유화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인 것 같다. 그러나 국제화한다는 것이 내 것을 버리고 덮어놓고 선진문명을 모방하는 것은 아니다. 또 국제화한다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곧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국제경쟁력이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제화·개방화가 충분한 준비없이 추진되면 약육강식의 처절한 국제경쟁에서 낙오되어 영원히 후진국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는 국제화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경제적 의미의 국제화 문제는 치열한 무한경쟁의 경제전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며,국가경쟁력 제고 수단으로서의 국제화를 추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경제가 현재 당면해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바로 국제경쟁력의 상실이다. 이러한 국제경쟁력 상실의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자유로운 경쟁이 부재하는데서 초래된다.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다름아닌 자유화라고 한다면 대내적 자유화가 규제완화이고,대외적 자유화가 개방화·국제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화가 성공되려면 대내 자유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규제를 완화하고 국제화한다고 기업의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내자유화 선행돼야
자유로운 경쟁을 허용할 때 경쟁력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뿐이다. 폐쇄국가·봉쇄경제가 개방화·국제화하는데는 자신의 국내 규범과 가치기준에서 국제질서와 규범을 받아들이려하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이해집단간 갈등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국제화는 국내 질서와 국제규범의 조화가 필요하고 경제활동의 준거기준이 국제수준과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의식의 국제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화는 국제질서 및 규범이 국내화이고 내면화라고 할 수 있다.
국제화가 대외적 자유화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이를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과거 자유무역의 이론적 배경인 비교우위생산론도 세계시장이 단일화되는 지금의 세계화 추세속에서는 논리적 근거를 상실하고 만다. 비교우위가 아닌 절대우위의 경쟁력 확보만이 무차별 무한경쟁시대의 생존전략으로서 가치가 있을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절대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가에 있다.
상품의 경쟁변수로는 가격·품질·디자인·생산량·성능·서비스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 경영학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느냐(Customer Satisfaction)라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종합적 개념으로서의 「가치」를 가장 중요한 경쟁변수로 인식하고 있다. 현대와 같이 지적 창의성이 존중되고 고객의 개성이 다양한 사회에서는 고객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만족감을 주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절대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그 나라 고유의 문화·역사 및 전통적 요소도 고객에게 의미있는 가치를 줄 수 있으면 창조적 차별화에 의한 절대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미국식 서부영화보다 우리의 문화·전통·토속적 요소가 짙은 『서편제』와 같은 영화를 제작해 수출할 때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문화적 요소가 경쟁력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쉽게 알 수 있다.
○문화요소도 경쟁변수
그런 뜻에서 국제화는 국제적 가치규범의 국내화인 동시에,국내 가치와 전통문화의 국제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어느 면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고,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경제가 국제경쟁에서 절대우위를 차지할 수 있느냐 여부는 결국 기술혁신이나 독창적 문화에 의한 새로운 가치창조에 달려있다. 오늘날과 같이 생산요소로서 지력이 중요시되는 정보사회·지식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사고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교육혁신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한국신용정보사장·경박>
◇필자약력
▲53세
▲서울대 법대졸
▲미 클라크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금융·재정실장
▲세계은행 고문
▲(주)한국신용정보 대표이사 사장
▲저서 『한국의 국제수지­외환론』 『전환기의 한국경제』 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