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파동」에 밀려난 “경제우선”/대통령 경제부처 연두보고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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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사진 제시보다 「물소동」 수습 급급/규제완화등 경쟁력 강화책 빛바래
김영삼대통령은 18일 환경처를 끝으로 경제부처의 연두 업무보고 청취를 마쳤다.
지난 11일 경제기획원의 업무보고를 시발로 일주일동안 매일 2개 부처의 보고를 받았으며 31일까지는 모든 중앙부처의 보고를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김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경제부처의 업무보고를 앞세워 경제우선의 방침을 천명하면서 의욕을 보였다.
작년말부터 외쳐오던 국제화와 개방화의 과제를 이번 경제부처 연두보고를 시발로 발동을 걸어 올 한해를 끌고 갈 계획이었다.
경제 각부처의 업무보고가 이러한 의지에 결코 미흡하지 않았지만 청와대 주변은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모두 숨소리를 죽이며 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하루 2부처 보고
이처럼 한랭전선이 짙게 드리우고 있는 까닭은 다름아닌 「낙동강 물사건」 때문이다.
한겨울에 밀어닥친 때아닌 물파동이 김 대통령의 신년구상을 망쳐 놓았기 때문이다.
「쌀」에 이어 「물」이 속을 썩이고 있기 때문에 『김 대통령은 외자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농도 나오고 있다.
사실 김 대통령이 제6차 신경제 회의를 겸한 경제기획원의 업무보고를 받은 첫날만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지난해 12월의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에 따른 쌀파동으로 곤욕을 치르고 대국민사과까지 해야했던 김 대통령는 전면적인 당정개편을 통해 한 고비를 넘겼고 새해들어서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국정목표를 제시,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일단 성공했다.
김 대통령은 이같은 분위기에 고무되어 새해초에는 『어느때보다 상쾌하다』며 국정이 순조롭게 풀려가리라는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있은 김 대통령과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청와대 4자회동은 여권내의 리더십을 공고히 함은 물론 국민적 화합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일방지시서 탈피
그러나 정부 업무보고와 거의 때맞추어 터져나온 「낙동강 오염」 문제로 업무보고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김 대통령은 이 총리를 낙동강변에 내보내고,이 총리로 하여금 대국민사과를 하도록 하는 등 비전의 제시보다 뒷감당하기에 급급하게 됐다.
「물」가 직접 관련이 없는 부처의 업무보고에서까지 『모든 사업에 우선해 물문제를 해결하라』고 할 정도로 당초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초점을 스스로 흐리게 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김 대통령은 새로운 형식의 업무보고를 만들어냈다. 과거와 같이 일방적인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국장에게 업무에 관해 직접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방식을 도입했다.
○계획재탕은 여전
일선 책임자들의 업무숙지 정도를 알아보고 대통령이 국정의 세세한 점까지 챙기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김 대통령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국정목표를 대전제로 ▲기업활동을 위한 규제완화 및 금리·지가인하 등 적극적 지원 ▲기업의 투자촉구 ▲노사관계 안정 ▲농어촌을 살리기 위한 인력개발 등 대책마련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 ▲지역간 균형발전 ▲과학기술 투자확대 등을 줄기차게 역설했다. 이와함께 국제화를 위한 제도·구조개혁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의 이같은 열의는 오염된 식수로 많이 희석됐다. 또 여러부처의 여전한 재탕 내지 타성에 젖은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분명한 것은 김 대통령의 개혁·국제화·경제활성화라는 의지이며,그래서 기대는 살아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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