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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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21) 셋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방파제를 따라 허옇게 파도가 부서지며 섬을 둘러싸고있었다.바위에 바다풀이라도 깔려 있는가.방파제 옆에 거의 초록빛에 가깝게 엷은 색깔로 띠를 두르듯 섬을 감돌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물빛이 한바다로 나가면서 점점 짙어지다가 수평선 쪽으로 다가서면서부터 검게 변하고 있었다.
초록빛에서부터 먹물처럼 검게 펼쳐져 있는 바다를 그들은 바라보며 서 있었다.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날리고 동백나무 잎을 스치며 지나갔다.
밑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방파제 옆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조그맣게,머리만 굴러가는 듯이 바라보였다. 몸을 돌리며 진태가 물었다.
『난 이 신사인지 뭔지는 참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뭐라는 거냐 이게?』 『누구 들어 임마.』 『듣기는… 우리뿐인데.』 『낸들 알겠냐.천황폐하 모시는 것도 있고,농사 잘 되라고 하는것도 있고.아 참,하찌망인가 뭔가 하는 건 장사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데던가 뭐 그렇지 아마.그럴 게 아니라 명국이 아저씨한테 물어 봐.빌기까지 했는데 오죽 잘 아시 겠어.』 『이놈들이 아주 누굴 놀려먹네.따지기는 뭘 따지냐.아 그냥,서낭당 앞 지나가다가 돌멩이 하나 던져 놓는다 생각하면 되는 거 아냐.장승 서 있는데다 대고 절 한번 꾸벅 했다 치든가.』 『장승보고 절하는 사람도 있어요?』 『고거 차암,누가 너 입 없는 줄 안다든? 조잘조잘 잘도 떠드네.』 『그렇지 않구요.말하라고찢어놓은 입인데요.가죽이 모자라서 벌려놓은 것도 아니구.흉년에밥 빌어 먹으라고 찢어놓은 것도 아니구.』 『거 차암.』 길남이 눈을 부라리며 진태를 바라본다.명국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디에 대고든 빌어보고 싶은 그 간절함이 무엇인지 왜 짐작을 못 하겠는가.
바로 그것이다.바다를 내다보면서 길남은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신사라고 빌지를 못하겠는가.장승에게 절인들 못하겠는가.길남은 몸을 돌렸다.그쪽이 육지였다.가야할 땅,건너야 할 바다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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