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공연기획가 강준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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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두딸의 아버지로서 아직까지도 자랑스럽게 여기는것은 잠잘재우는아버지였다는 점이다.한두살까지는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가 효과가 있었다.『삽살개야 짖지마라,꼬꼬닭아 우지마라』하면서 애를 안고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면 신통하 게도 애는 곧새근거리는 것이었다.
아이가 안아재우기에는 너무 무거워 졌을때 즐겨 들려주던 자장가로는『달아 달아 밝은 달아』였다.아마도 이세상에서 세개의 음만으로 구성된 가장 멋진 이 노래는 자장가라는 그 음률의 단조로움 때문에 어른이라도 잠을 자지않고는 못배겼으리 라 생각된다. 작은애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쯤의 자장가는 전혀 달라졌다.애들은 노래대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들기를 좋아하게 되어 등장한고정 레퍼터리가『토끼와 거북이』이야기다.이야기의 줄거리야 뻔한것이지만 그 표현만큼은 자장가로서의 격을 잘 갖 춰 단조롭게 반복되는 리듬과 끝없이 펼쳐지는 시퀸스를 지니고 있었다.
예를들어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시작하는데 이 소문을 들은 동물들이 구경을 오게 되었다.『동물중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가어흥하고 오지요,사자도 으르릉거리며 오지요,쿵쿵하고 코끼리도 오지요,그 커다란 코끼리도 한입에 꿀꺽 삼키는 보아 구렁이도 오지요(너희도 후에「어린왕자」를 읽어보면 알겠지만),방울뱀도 꽃뱀도 따라오지요,큰입을 딱딱 벌리는 악어도….』이 끝없는 동물들의 순서는 매일 똑같아야 하며 하나도 빠지면 안된다.느림보거북이가 걸어갈때쯤 되면 아예 옛 자 장가조에 맞춰 노래를 불러야 한다.『엉금엉금 걸어서,쉬지않고 걸어서,하루종일 기어서….』애들은 토끼가 잠자는 곳에 이르기전에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며칠전에 열한살짜리 작은애가 잠자기전에 잼그룹의 테이프를 듣는것을 보고 가볍게 야단쳤다.다음날 아이는 엄마한테만 속삭였다. 『아빠가 화 내실까봐 얘기를 안했는데「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어.』이제 큰 아이들의 자장가를 이해해야할 때인가 보다.약간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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