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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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16) 길남이의 손을 잡았다 놓고,명국은 방바닥을 더듬거리며 소변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숙소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조금 떨어져서 지어진 가건물이 변소였다.여름이면 이상하게 그쪽에서 숙소로 바람이 불어서 비라도 오는 날이 면 코를 잡게 냄새가 풍겨오기도 했었다.
밖은 캄캄했다.우뚝우뚝 솟아 있는 숙소 건물들이 캄캄한 하늘을 이고 솟아올라 있고,띄엄띄엄 창문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불빛들이 보였다.밤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날리며 지나갔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명국은 자신에게 묻는다.마음이변한 걸까.변했다고 하자.그렇다면 그렇게 변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그러나 그때나 이제나 뭐가 변했단 말인가.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다.
그런데 그때는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왜 이제와서 가겠다고 나서는 건가.어쩌면 이런 저런 사정은 그때보다도 더 나빠졌지 않은가.그때야 함께 가기로 한 사람들이친구들이었다.나이도 있었고 배포도 맞았었다.게다가 나고야 쪽으로만 가면 경학이 친척이 있어서 우선은 발붙일 그루터기라도 있었던 셈이다.그걸 별로 믿지 않았던 거지.겉으로 드러난 저간의사정은 그랬었다.
『늘 흰소리나 치는 사람,무슨 나쁜 생각을 꼭 품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남 안되는 건 된통 밝히는 사람,경학이 그런 사람이다.그 말을 믿고 천금같은 목숨을 거나?』 처음부터 삼식이에게 했던 말도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그나마 흰소리치면서라도 여기만 떠나면 가서 발붙일 곳이 있다는 동행이 있는것도 아니다.바다를 건너가서의 당장 한 끼도 비럭질이 아니면 도둑질을 해야 하는 판이 아닌가.
삼식이나 태복이가 도망을 치기로 했을 때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다.잘 되면야 좋지만…그런 두려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그런데지금은 다르다.생각하면 할수록 절박한데 그 절박함이 아주 편안하게 다가온다.죽기밖에 더하랴.북망산천?그건 솥 에 넣은 닭이꼬끼오 하고 울 때나 가는 게 아니다.그건 그냥 발뿌리에 채이는 곳,그게 여기다.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이런 마음이었을 게다.그때 나만 남겨두고 셋이 떠날 때,그 사람들 마음이 이랬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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