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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서해 경제권:1(밖을 보자: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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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 공해기술 앞세워 중국 공략/경협 앞서 「눈뜨는 용」 심층분석/가여운 곳 긁어줘가며 착착 진출/한국,대연에 백53개 기업 진출/중국 대표적 중공업기지로 급성장
동아시아에서 태동하고 있는 경제권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 발생적이라는 것이다. 즉 자연경제권(Natural Economic Area)이다.
따라서 경제동맹이나 블록과는 달리 철저히 국제경제시장의 필요성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 상대국의 필요성을 면밀히 읽어내지 못하면적응도 어렵고 그만큼 실패의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환서해 경제권을 공략하는 일본 기업들에 대해 일본 경제학자들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신경제권의 「장미빛」 구상과 실제적인 추진과정 사이에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과거 일제식민정책에 피해를 받았던 한국·중국 등 동남아시아 국민들의 반일감정이나 중·러시아간의 해묵은 갈등도 넘어야할 산이다. 그래서 이들 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 경제권 구상을 곧잘 「얽힌 실타래」에 비유한다.
국제적인 화해무드와 경제 중시의 움직임들이 분명히 동아시아지역에도 경제협력의 분위기를 조정하고는 있지만 지역과 지역간에 상호보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앞으로의 과제다.
한때 일본을 대표하는 「철의 도시」에서 「아시아 정보발신기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일본 남부 기타규슈(북구주)시가 경제개발 열기로 가득찬 중국 대연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해가는 과정은 「구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으로서 주목할만하다.
환서해 경제권 구상에 지역의 미래를 걸고 있는 기타규슈시가 자매도시인 대연과 경협을 논의하는 자리엔 「약방의 감초」처럼 늘 따라다니는 테마가 하나 있다. 바로 환경문제다.
기타규슈는 중국의 대표적인 중공업도시로 줄달음치는 대연에 적극적으로 자본·기술을 투자하면서 성장의 부작용인 「공해」문제에 대한 처방 제시도 잊지 않았다.
상대방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주는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이나 중국의 공해문제가 중국만의 몫이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환서해권 전역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심려 때문만은 아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중국이란 거대한 경협 파트너를 대하는 일본의 접근법을 알 수 있다.
기타규슈가 대연과의 경협과정에서 하필이면 「환경문제」를 거론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시청 아시아과의 후지모토 도시아키(등본수명) 과장은 우선 책상 맨밑 서랍에서 2장의 사진을 꺼내 나란히 내보였다.
빛바랜 한장의 사진은 마치 하늘을 향해 포탄이라도 쏘아올릴듯한 기세로 서있는 신닛테쓰(신일철) 야하타(팔번) 제철소의 빽빽한 굴뚝들이 검은 매연을 내뿜어 도시전체의 숨통을 죄고 있었으며 비슷한 앵글로 최근에 찍은 또 한장의 사진은 검은 연기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푸른 하늘이 선명했다.
○경제교류 실마리
『60년대까지만해도 기타규슈의 공해문제는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각고의 노력끝에 공해문제는 말끔히 사라졌지요.』
후지모토 과장은 기타규슈가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공해방지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제 그 기술을 본격적인 대대연 경제교류의 실마리로 삼을 생각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지난해 대연의 봉추도빈관 제8호관.
이곳에서는 10월28일부터 11월1일까지 5일동안 기타규슈·대연 두 시의 관계 공무원은 물론 기업체 사장·공장장,그리고 환경전문가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두 시의 우호도시 관계 체결 15주년을 기념하는 「대연­기타규슈 기술교류 세미나」다.
이 세미나를 사실상 준비하고 기획한 곳은 기타규슈시의 재단법인 「기타규슈 국제기술협력협회」(KITA). 80년 기타규슈청년회의소와 상공회의소·서일본공업구락부 등이 주축이 돼 설립한 이 단체는 기타규슈가 축적한 공업기술을 개발도상국들에 이전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러나 요즘 이 단체는 사업의 상당한 비중을 중국,특히 서해 연안지역에 두게 됐다. 미래에 대한 행정당국(시)의 비전과 정책을 주변단체가 적절히 보조하고 있는 형태다.
기타규슈가 이 행사를 위해 초빙한 강사는 모두 33명. 기업에서 15명,KITA에서 8명,그리고 나머지는 대학교수와 현·시 의원들이다. 기타규슈시는 통역을 맡기기 위해 규슈공업대학에 유학온 중국인 유학생 16명까지 대동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5일간의 총경비만해도 8억9천만엔(약 65억원)으로 적지 않았다.
공해방지 기술에 관한 주제는 기계설비·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주제와 함께 이날의 세미나에서도 어김없이 다뤄졌다. 그뿐 아니라 13개 대연 현지공장 사장과 생산 책임자인 공장장급 1백57명을 불러모아 행한 수질·대기분석 등 환경분석에 관한 실습도 있었다.
○세미나까지 개최
『경제교류는 궁극적으론 각자의 이익과 발전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먼저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행사의 실무를 맡아 진행시켜온 KITA의 나카미조 아카히로(중구명홍) 계장은 공해방지기술 이전이야말로 경제개발에 여념이 없는 중국엔 절실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동북3성(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은 인구가 약 1억명으로 중국 전체인구의 약 8.8%인데 비해 국민소득은 12.2%,공업생산액은 13.1%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은 특히 경공업 1에 대한 중공업의 비율이 1.4∼2로 명실상부한 중공업기지다. 중공업을 기축으로 한 중국의 대표적 성장지역인 것이다. 철강업은 동북지방 가운데 특히 요령성을 대표하는 산업이다.
기타규슈시가 요령성의 「경제기술개발구」인 대연에 그처럼 애착을 갖고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제철지역으로 성장하면서 기술축적을 해놓은 기타규슈는 중국 철강산업의 핵인 대연을 절호의 경협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타규슈의 접근방식은 매우 신중하다. 궁극적으로는 대연의 엄청난 자원과 노동력,그리고 발전 가능성과 결합해 지역발전과 지역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게 목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짚어가며 행동하는 것이다.
『대연의 푸른하늘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이 기술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 기타규슈시 공무원의 말은 눈뜨기 시작한 아시아의 「공룡」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접근자세를 엿보게 한다. 『한국기업은 일본기업이 갖고 있지 못한 큰 장점을 갖고 있어요. 바로 적극성입니다. 대연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활동을 보면 단시간에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충고하고 싶은 것은 경협에 앞서 상대방을 충분히 연구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대연 오카노 벨브사 사장)
○한국 적극성 장점
일본은 시장경제 공업화의 걸음마단계라 할 수 있는 중국에 선진국 기술인 공해방지기술을 이렇게 해서 판매할 수 있었다.
서해를 「황금의 바다」로 만들기 위한 한국기업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93년 11월 현재 1백53개의 한국기업이 대연에 진출해 있으며 총 투자액만도 2억8천만달러에 달한다. 이제 시장의 잠재력과 이익만을 보고 무턱대고 달려들기보다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환서해권 경제교류를 위해 실마리를 찾아가는 작업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때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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