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과학 기술계 고질 「뻥튀기」/김창엽 과학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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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과학기술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 대통령에서부터 국민학생까지,요즘 이런 말이 너나없이 통한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다.
과학기술계도 국민들의 이런 기대어린 눈길을 의식했음인지 최근 잇따라 「연구활성화 조치」 등을 취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인 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대형 해프닝이 새해 벽두부터 발생해 과학기술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을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난 4일 국내 한 중소기업이 IBM과 매킨토시 공용의 노트북 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전세계 시장을 휩쓸게 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일부 보도처럼 최첨단 기술이 개발됐고,이를 바탕으로 선·후진국의 노트북 컴퓨터시장을 싹쓸이 할 수 있다면야 손이 부르트게 찬사의 박수를 보내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기술은 연구에 참여한 어느 박사의 말처럼 『하이테크 아닌 중급기술』이며 성공여부 역시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다.
또 기술적으로도 매킨토시 단독과 비교해 열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이번 연구는 우리 과학기술계의 고질적 병폐라 할 수 있는 뻥튀기가 재발한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대포장」이 개발자측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보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해프닝은 또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미디엄테크」 전략의 첫 시행착오이자 과기처의 연구개발전략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케이스이기도 하다.
늦어도 96년초에는 미 IBM사 등 이 「파워PC」라는 칩을 이용해 IBM·매킨토시·유닉스 등 다양한 운영체제에 강력한 호환성이 있는 제품이 선보일 것이기 때문에 이번 연구는 애당초 시장성이 불확실한데도 무리하게 서둘러 국가지원 과제로 선정됐다는 점이다.
과기처는 7억5천만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며 이 사업에 뛰어들때는 최소한 이 제품에 대한 면밀한 시장조사를 했어야 했다. 과기처 간부의 말마따나 이번 연구개발은 실질적인 성공여부가 시장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시장성이 지금처럼 불투명한 가운데 개발제품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막대한 예산낭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학기술은 국민의 신뢰없이 발전할 수 없다. 뻥튀기연구에 국민들이 이골나고,엉성한 연구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어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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