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駐英대사관 '황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번 일요일부터 3박4일간 영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영 대사관은 15일 서울로부터 날아온 소식 탓에 몇달 전부터 어렵사리 짜맞춰온 일정을 취소하느라 분주했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잭 스트로 외무장관과의 회담이었다. 지난해 11월 尹장관은 영국 외무장관과 회담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스트로 장관은 그 무렵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문이 예정됐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에게 발언권 있는 사람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뿐""영국의 외교력을 남북 관계 개선에 활용해야 한다"는 이태식 주영대사의 지론처럼 영국은 남북 관계나 한.미 관계에서 중요한 외교적 지렛대다.

그러나 尹장관은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과 연쇄 장관회담을 했지만 영국 외무장관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 이번 회담은 대사가 직접 영국 외교부 관료들을 만나 그 필요성을 강조해 성사시켰다.

다른 일정 역시 가볍지 않다. 영국 외교가의 유명 인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왕립 국제문제연구소(RIIA)에서 한국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강연할 예정이었다. 연구소 회원들에게 이미 한달 전 초대장이 돌아 참석자가 확정된 상태다.

장관은 이어 2박3일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지난해 초 정동영 의원이 노무현 당선자를 대신해 참석해 '후계'운운했던 세계 최고 VIP 모임이다.

7개국 대통령과 9개국 총리가 모이는 포럼에서 장관은 유엔 대북특사,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 북한 핵 문제와 직결된 국제 거물들과 얼굴을 맞대고 토론할 예정이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 尹장관의 이번 영국.스위스 방문의 외교적 의미를 힘주어 말하던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모두 말을 잊은 듯했다. "다음에 얘기하자"는 쓴웃음 외에는.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