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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을살리자>12.옥수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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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내 옥수수 소비량(지난해 기준 6백38만t)의 98.6%가미국.중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토종 강원찰옥수수가 전세계 옥수수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미국 시장을 비롯,일본등에 파고드는 이색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일본 소비자들이 이 옥수수를 즐겨 찾는 이유는 입맛이 단맛에서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맛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증거.
토종 옥수수로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강원찰옥수수는 낟알이 주로 흰색으로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
특히 찰옥수수 품종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데다 그중에서도 강원찰옥수수의 품질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농촌진흥청 옥수수연구실의 찰성 성분비교 조사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품질의 옥수수 종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옥수수 수입량은 90년부터 92년까지 연평균 6백20만t씩 6천여억원 어치(식.가공용 1백70만t,사료용 4백50만t)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체 곡물 수입액의 44%나 되며,그 액수는 수입액 2위인 밀보다 1천8백억여원이 더 많고 쌀 시장 개방 첫해의 예상 수입액보다 무려 35배 정도가 많은 엄청난 금액이다. 지난 1년간 수입한 옥수수 금액이 95년부터 최소시장 접근방식에 따라 10년간 수입될 쌀 총액 보다 많다는 계산도 나온다. 옥수수 수입량이 이처럼 엄청난 것은 70년대 이후 가축사육이 늘어나면서 사료용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
쌀과 보리등 주곡 위주로 농사를 지어온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옥수수를 밭머리.산비탈에 소규모로 재배해「救荒食」으로 이용했기때문에 가뜩이나 생산량이 보잘 것 없었던데다 쌀등 주곡의 자급자족등이 이뤄지면서 그나마 재배면적이 격감해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강원찰옥수수를 제외한 수십여종의 토종 옥수수는 재배가 계속되지 않아 명맥이 끊겨버리고 말았다.
77년 농촌진흥청과 忠南大 농과대학이 합동으로 전국 각지에서재배되고 있던 옥수수를 수집해 토종으로 분류한 것은 모두 1천2백여점.
정확한 품종 분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지만 특이 품종으로 낟알이 자색 또는 흑색을 띠고 있는 것도 있다.
수집된 토종 옥수수의 형태를 1차 분석한 결과 낟알이 굵고 단단하며 모양은 타원형에 가까운 경립종(硬粒種)이며,껍질은 부드럽고 이삭이 원뿔형인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부 이남 지역은 주로 찰성이 없는 메옥수수가,이북지역은 찰옥수수가 재배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삭의 형태가 주먹 모양인 주먹 찰옥수수와 쌀알과 같이 끝이뾰족하게 생긴 울릉도 옥수수,이삭이 여러개 달린 多이삭 옥수수등도 널리 재배된 것으로 밝혀졌다.
주로 충북괴산지역에서 재배됐던 주먹찰옥수수는 강원찰옥수수와 특성이 거의 비슷하지만 이삭의 크기가 3분의 2정도인 것이 다르고,울릉도옥수수는 보통 옥수수와는 달리 알갱이가 무른 특성을지녔다. 전북이리시 일대 평야지대에서 재배됐던 多이삭 옥수수는한 줄기에 5~8개가 달려 보통 두세개 달리는 다른 품종에 비해 수확량이 좋아 한때 농민들로 부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70년대들어 젖소등 가축사육이 급격히 늘면서 재배 형태가 낟알보다 대.잎을 이용하려는 엔실리지용으로 바뀌면서 잎과줄기가 무성한 외래종 물결속에 토종이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식용 옥수수도 단맛과 생산성이 뛰어난 미국산 옥수수와 초당옥수수등 외국품종이 보급되면서 멸종이 더욱 가속화됐다.
국내에 옥수수가 도입된 시기 역시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려말 元軍 말발굽에 묻어 들어왔다는 설도 있으나「콜럼버스가 美대륙을 발견했던 1492년부터 옥수수가 南美대륙에서 他대륙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세계적 정설로 돼있어 설득력은 얻지 못하고 있다.
다만 1596년 李時珍의『本草綱目』에 옥수수의 어원인 玉蜀黍를 새로운 곡류로 소개하면서도 구체적 설명이 없는 점으로 미뤄이때 중국에 처음 도입됐고,우리나라에는 18세기께 들어 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農家集成』『山林經濟』등 1600년대의 문헌에 나타나지 않던 옥수수가 1776년에 발간된『增補山林經濟』에 처음으로「쪄먹고 죽쑤어 먹기 좋은 곡류로 5개 품종이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하고 있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옥수수는 다른 작물과 달리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면서도 하나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쓰임새가 다양해 예부터 농민들에게는 보물처럼 여겨져 왔다.
쌀.보리보다 단백질 함량은 다소 낮지만 지방질이나 비타민이 풍부해 50,60년대에는 중요 식량자원중하나가 되기도 해 강원도등 일부 산간지역에서는 좁쌀.팥.콩등과 섞어 밥을 지어먹기도했다. 수염.깜부기는 한약재로 쓰였고 뿌리에서 나오는 수액은 아낙네들의 피부화장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특히 단것이 귀하던 시절 어린이들이 주전부리로 물오른 옥수수깡을 씹어 먹기도 했으며,당시로서는 그 맛이 요즘의 드로프스나쭈쭈바에 비할 바 아니었다.
가루는 또 빵.과자.물엿 제조용으로,전분은 포도당.알콜.방적용 풀등의 원료로 각각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옥수수에는 치아및 잇몸질환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베타-시토스테롤(Sitosterol)이 다량 함유돼 있는 사실이 국내 제약업계 임상실험 결과 밝혀지는등 의약용으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미국 암협회도『팝콘은 고도의 섬유질과 적절한 지방분을 함유하고 있다』며 소비를 권장하고 있고 美의사협회도 당분이 없는 우수한 건강식품으로 꼽고 있다.
가축의 발육에 필요한 단백질.지방.무질소물.섬유질등 양분과 비타민 A도 풍부해 최고급 사료용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 역사가 짧으면서도 밀 다음으로 가장 많이 생산.소비되는 중요 작물로 순식간에 전세계에 퍼진 것도 이같은 장점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토종 옥수수에 대한 보급과 품종개량을 서둘러 엄청난 외화를 들여 수입하고 있는 옥수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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