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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앞둔 신수정 교수 “피아니스트 한 세대 저물어 가 후배 양성 밭 일구기는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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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대 신수정(65·사진) 교수가 운영하는 서초동 모차르트홀에는 오래된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유학을 다녀와서 처음으로 산 그랜드 피아노에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작은 피아노를, 서른 다 돼서야 그랜드 피아노를 처음 가지게 됐죠.” 신 교수는 “지금 학생들이 공부하는 환경을 보면 세월이 많이 지난 걸 느낀다”고 말했다.

1956년 3월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20번으로 데뷔했던 14세 피아니스트 신수정 교수가 이달 31일 정년퇴임한다. 1969년 임용된 지 38년 만이다. 신 교수는 “이제 음악계의 대부 격인 현제명 선생님을 직접 알았던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겠네요. 한 시대가 저문 거죠”라고 풀이했다. 그와 동갑인 서울대 김민(바이올린) 교수와 김정자(국악) 교수도 동시에 퇴임한다.

그는 동년배인 이경숙(63),김남윤(58)씨와 함께 처음으로 전문 연주자의 시대를 연 피아니스트로 평가된다. 한국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 외국을 ‘개척’하다시피 해 유학을 떠났다. “그때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일주일 넘게 타고 공부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정말 목숨걸고 공부했던 시절이에요.” 19세에 동아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20세에 서울대를 졸업해 ‘스타’ 피아니스트였던 신 교수는 오스트리아와 미국에서 공부했다.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힘든 시절도 있었다. 그는 “6살에 학교를 들어가는 바람에 뭐든지 남들보다 빨리 마쳤죠”라고 설명했다. 처음 피아노 앞에 앉은 나이는 7세. “절대 잘 치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집 옆의 중학교 음악 선생님에게 배우기 시작했는데 바이엘 중에 7번을 떼지 못해서 고생하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니까요.” 어린 나이에 학교를 다니며 “잘 넘어지고, 구박받던” 신 교수는 6·25 전쟁 당시 겨울 부산의 천막 교사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나갔다.

“당시만 해도 음악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특히 피아노 연주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드물어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피아니스트=신수정’이라는 등식이 생길 정도로 입지를 확고히 한 신 교수였지만 한 때 피아노를 쉰 적도 있었다. “40세가 넘어서였죠. 무리한 연습 때문에 팔을 다쳐 일년동안 피아노를 치지 못했어요.” 평생 건반만 만지며 산 사람에게 힘든 일이었지만 그는 “내가 왜 음악을 해야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로 연습하는 법, 음악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도 이때 생겼다고 한다.

신 교수는 “요새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실력은 놀랄만큼 많이 늘었죠. 하지만 내면을 채우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라며 “교수라는 타이틀은 벗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밭 일구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년퇴임 다음날인 9월1일 오후8시 그간의 음악인생을 돌아보는 음악회를 예술의전당에서 연다. 첫 독주회 때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터키 행진곡’ 등을 연주하며 지난 얘기도 들려줄 예정이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태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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