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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인터뷰>빗장풀린 쌀시장 갈길바쁜 이판석 농진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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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南美 우루과이의 휴양도시인 푼타델 에스테 앞바다에서 시작된 개방의 물결이 마침내 우리의 황금들판에서 출렁이게 됐다.
쌀시장은 10년이란 유예기간을 얻어냄에 따라 그동안 개방여부자체에 쏠렸던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우리쌀이 얼마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이때문에 도처에선 과거 산업계에 일었던 것처럼『우리농업은 기술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고 이 결과 국내 농업기술개발의 총본산인 水原농촌진흥청에 대한 관심도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지난3월 慶北도지사에서 자리를 옮겨 농촌진흥청을 이끌고 있는李判石청장(59)을 만나 우루과이라운드(UR)와 관련한 진흥청의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이번 UR협상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개방이 우리 농민에게는 엄청난 시름이요,시련이지만 나라 전체로 볼땐 어쩔 수 없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이죠.물론 이 사실은 우리 농민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농민들이 좌절하는 것은 개방여부 자체가 아니라그동안 산업화에 밀려 계속 천대만 받던 농업이 또다시 희생의 대상이 돼야하는 현실 때문이라고 봅니다.
장기적인 대책과 실천방안을 신중하게 마련해 우선 농민들이 다시 꿈과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진흥청은 진흥청대로 외국농산물에 맞설 기술개발에 최선을다할 생각입니다.
쉬운일은 아니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UR와 관련해 농진청의 기술개발 방향에 변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과거에는 식량의 자급자족이 최대목표였기 때문에 생산비를 얼마나 투입하든간에,또는 품질이 어떻든간에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었죠.경제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입니다. 앞으로는 외국농산물과 경쟁해야하므로 생산비절감 기술이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보관.포장.가공기술에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벼품종개발도 80년대후반부터 다수확품종 위주에서 고급품종과 다양화된 품종으로 차별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는데 앞으로는이에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이미 우리 입맛에 가장 맞다는 일품벼가 보급중이고 색깔있는 쌀,향기나는 쌀,비타 민이 풍부한 쌀등을 거의 개발해놓은 상태입니다.』 -좋은 품종을 개발한다고 하지만 외국쌀은 가격면에서우리와 너무 차이가 납니다.
과연 완전개방때 경쟁이 가능하겠습니까.
『현재 생각하는 것만큼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봅니다.한 가정의 전체 지출중 쌀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합니다.완전개방이 된다고 해도 우리쌀의 품질만 앞선다면 1만~2만원의 돈 때문에 외국쌀을 사먹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 니다.
물론 문제는 있습니다.美國등 쌀생산국가들이 우리시장을 겨냥해우리 입맛에 맞는 쌀품종 개량작업을 벌이는 것인데 이 경우 우리 것이 다소 좋다고 해도 일반인은 밥맛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것이죠.
이때문에 밥맛좋은 쌀의 개발노력과 동시에 병충해에 강한 품종에도 역점을 둘 생각입니다.농약이나 제초제를 거의 치지 않아도되는 쌀을 생산할 수 있다면 방부제를 쳐서 가져오는 외국쌀과의승부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벼품종을 개량하는데 있어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품종개량은 유전관계를 이용해 수많은 재료를 반복적으로 결합.재배.실험해나가면서 목표형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오랜 시간을 요구하게 마련이고 한번의 실수가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주기도합니다. 78년 벼도열병으로 농가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던「노풍파동」이 그 예입니다.통일벼의 밥맛이 없다는 세찬 여론 때문에수확도 많이 되고 밥맛도 좋은「노풍」이라는 품종을 급히 만들었는데 병충해에 약하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죠.
빠른 시일내에 좋은 품종을 많이 만들어달라는 주위의 기대는 크고 실무적으로는 이같은 점때문에 고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농진청 개발기술이 실제 농촌에 적용이 잘 안된다는 말도있습니다.기술전파과정은 어떻습니까.
『농민들은 새로운 품종이나 기술을 도입하는데 매우 적극적입니다.하지만 품종이나 기술이란 것이 지역실정.토양.기후등 복잡한조건들이 잘 맞아야하기 때문에 옆마을에서 잘된 것이 자기마을에선 안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가끔씩 철저한 준비 없이 주위 말만 듣고 섣불리 일을 벌였다가 낭패보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농촌지도소 인력의 수준이나 기능도 끌어올려 이런 일을 줄이는방안도 강구중입니다.』 -농업기술개발은 농진청이 주도하도록 돼있어 민간차원의 기술개발이 부족해지고 농진청자체노력도 갈수록 안이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어떻게 보십니까.
『농업기술개발은 오랜 연구와 전문지식.투자가 필요해 개인이 하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져 공공기관이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또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무분별한 연구가 이뤄질 경우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어 민간연구의 참여가 제한돼 있는 것 도 사실이죠.그러나 앞으로는 상업적 기술이 중요시되므로 현실감이 뛰어난 민간차원의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하겠습니다.
안이하다는 평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우리 연구진은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에도 불구,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요.』 -높은수준에 오른 국내기업들의 산업기술을 농업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요. 『현재 특정연구과제를 선정해 교수.기업체.농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연구를 하고도 있지만 그동안 농민보호라는 원칙때문에기업과 농촌의 연계가 사실 약했죠.
***농민-기업 공동작업 하지만 벌써부터 이번 UR협상의 수혜계층인 기업이 농촌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 앞으로는 협력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입니다.
산업기술을 농업에 적용할 여지는 얼마든지 많습니다.기업체의 자동화.신소재기술,의약.식품업체의 발효.생명공학기술,환경기술등이 농업에 접목될 경우 엄청난 발전이 이뤄지리라 봅니다.』 -그동안 농진청을 이끌면서 느꼈던 소감을 정리해주시죠.
『그동안 지방의 시장.도지사등을 맡아본 탓에 부임전엔 농업에대해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졌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안들어요. 진흥청의 역할이 얼마나 어렵고 막중한지 뒤늦게 실감했으며 그동안 주위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묵묵히 일해온 진흥청 사람들을 다시 보게됐습니다.
UR협상까지 타결되다보니 농진청장으로서 책임감은 더욱 커졌습니다.현재 농촌에 몰리고 있는 정부.국민들의 관심도 일시적이 돼서는 안되겠고 진흥청 또한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일할 것입니다.』 〈李孝浚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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