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해진 경호실 창설 30돌 행사/김현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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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매년 12월17일이 되면 청와대 주범은 요란·번잡했었다.
연말을 맞은 정치인·기업인들이 「인사차」 비서실과 경호실을 들르는 탓도 있었지만 이날은 방문객이 유독 줄을 이었었다. 온종일 고급승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청와대 주차장을 채웠다.
12월17일은 대통령 경호실 창설기념일이기 때문이었다.
박정희대통령 시절의 박종규·차지철,전두환대통령 시절의 장세동실장 등 경호실이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기구로 군림하던 그 시절,평소에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경호실이었지만 이날은 정말 대단했다고 많은 이들이 회고했다.
내로라하는 고위정치인·대기업가들이 두툼한 봉투를 들고 늦을세라 달려왔으며 수천만원이 든 초호화판 파티에서는 일류 가수들이 앞다퉈 노래를 부르며 창설을 축하했었다는 얘기다. 또 내심이야 어떻든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 초청해준데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금년 17일의 청와대는 이상하리 만치 조용했다. 더욱이 이번은 창설 30주년으로 흥청댈만도 했다.
그러나 고작 수방사와 경찰청에서 보내온 축하화분이 이날을 기억케할 정도였다.
전 수석비서관이 사표를 낸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경호실은 당초부터 차분한 행사를 계획했으며 20여일전부터 배구·사격·무술대회를 갖는 것으로 30주년 행사를 갈음했고 17일에는 조촐한 기념식을 가졌을 뿐이다.
점심때 5백여 요원들과 경호실에 통제를 받는 군경들에게 특식이 제공된 것이 평소와 다른 점이었다.
경호실은 또 행사를 간소화한데 따른 남는 비용으로 1만2천원짜리 기념시계를 제작,지난 30년간 경호실을 처겨간 선배들에게 우송했다.
「총잡이」 등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서도 나름으로 애쓰고 있다. 청와대 내방객에 대해서는 깍듯이 예를 표해 과거의 경호실을 아는 사람들을 어안이 벙벙케 하고 있다. 경호요원들은 전문직 종사자로서 나름의 기량을 닦아야 한다는 박상범실장의 지시에 따라 외국어를 공부하고 1개월씩 주어지는 연수기간을 이용,각자 필요한 것을 배우고 있다.
청와대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곳은 경호실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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