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날치기」로 빛바랜 안기부법 개정/첫 문민국회 총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쌀논의 미흡… 선거법은 숙제/야당 공세·유연전술 돋보여
새정부의 첫 정기국회(제1백65회)가 18일 끝났다. 개혁의 제도화라는 의욕을 갖고 시작된 이번 국회는 안기부법 개정과 같은 매우 큰 성과를 남긴 반면 「날치기」라는 가장 비개혁적인 구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국회는 무려 1백57건에 이르는 법안을 처리했다. 이것은 과거 5·16이나 5·17과 같이 헌정이 중단된뒤 비입법기관에서 처리한 것보다 많은 숫자다. 특히 금융실명제 실시와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하는 경제 관련법안이 80건에 이르렀다. 또 행정쇄신위원회를 통해 국민생활 불편 해소차원에서 제기된 문제들도 많았다. 집단유급 등 올해 최대의 사회문제로 부각됐던 약사법도 국회의 중재로 원만히 처리됐다.
○정보정치에 쐐기
이번 국회 최대의 성과는 역시 안기부법 개정이다. 안기부법 개정은 예산 날치기,안기부와 민자당 협상팀 사이의 갈등,청와대의 개입 등 진통끝에 이루어졌다. 국회에 정보위원회를 만들어 안기부의 예산과 직무를 감독할 수 있게 됐고,수사권중 많은 부분을 검찰로 되돌려줬다. 또 안기부원이 정치에 개입하거나 인권을 침해할 때는 형사처벌하도록 했다. 여기에 영장없이는 도청하지 못하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을 만들어 군사정권이후 계속돼온 정보정치를 허물었다.
민주당은 정부의 개혁정책을 의식,어느 때보다 합리적으로 대응해 역대 어떤 야당보다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다. 초기부터 여야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진 과거 청산문제는 민주당의 유연전략으로 유보됐다. 예산의 실질심사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정부측도 처음으로 국방예산의 구체적 명세를 비밀을 전제로 공개했다. 야당도 2천3백억원에 그치는 삭감폭을 주장했다. 안기부 예산은 쟁점으로 부각됐으나 끝내 총액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논란은 여론을 일으켜 안기부법 개정에 힘이 됐다. 예산처리가 안기부법 처리와 연계되면서 야당의 의사진행 방해가 계속됐고,시한에 몰린 민자당은 문민정부답지 않게 날치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저지에 막혀 사상 처음으로 날치기가 실패하는 기록을 남겼다.
○의원들 알찬 질의
초반의 국정감사도 여느 때보다 점수를 많이 받았다. 정부의 강력한 개혁추진으로 공격의 초점을 잃은 것으로 보였던 민주당은 오히려 합리적인 감사로 주목을 끌었다. 한건주의식 폭로는 거의 사라지고,야당 의원들도 대안을 제시해가며 따졌다. 전문가 의원이 부각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자당 의원들도 정부 비호만 하던 옛모습을 버렸다. 일부 민주계 의원들은 과거 야당시절과 다르지 않게 호된 비판을 퍼부어 수감기관의 기가 질리게 했다. 정기국회 막판에 터진 쌀개방은 일찌감치 국회를 파장으로 몰았다. 새 정부 출범이후 수세로 물리기만 한 민주당이 공세를 돌아설 발판이 됐다. 그러나 전면개각이라는 깜짝쇼로 마지막날의 대정부 질문이 무색해졌다.
김영삼대통령이 강조한 선거법을 비롯해 정치자금법과 지방자치법이 처리되지 못하고 넘어간 것은 다소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쌀개방으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긴 하지만 날치기 후유증 등으로 농어촌정비법 등 농림수산 관련법안 13개가 유보됐다.
○정자법도 미뤄져
쌀시장 개방 등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후속대책도 국회내 특위에서 다루도록 미루어졌다. 안기부법의 후속조치로 국회에 정보위를 만드는 국회법 개정도 연기됐다. 따라서 임시국회가 내년초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번 국회는 그 어떤 국회 회기보다 생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김진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