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품 관세인하… 수출엔 호재/UR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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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기간중 수입쌀 가공·주정에 활용/금융부문 미 요구 최소 반영… 피해 줄어/건설·유통등은 치열한 경쟁 불가피/수입규제 남발 제한… 일단 긍정효과
7년여를 끌어온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온국민의 관심을 모아온 쌀시장 개방을 비롯,금융·통신·건설 등 국내 시장이 이번 UR협상 타결로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게 됐다. 경쟁체제를 아직 갖추지 않은 분야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세계 각국의 관세가 낮아지고 반덤핑과 비관세 장벽을 쌓는 일이 예전보다 어려워져 그만큼 우리의 수출을 늘릴 수 있는 호기도 된다. UR협상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야별로 점검해본다.<편집자주>
▷쌀개방◁
UR협상에서 한미간에 합의를 본 쌀시장 개방안은 우리 농촌과 국민경제에 어떤 파장을 던질 것인가.
개방 첫해인 95년에는 86∼88년중 평균 국내 총소비량의 1%인 39만섬이 수입되며 이후 매년 수입량이 늘어나 유예기간 마지막해인 2004년엔 4%인 1백58만섬이 들어올 예정이다.
외국 쌀이 수입되면 국내 쌀값이 하락,농민들은 소득이 줄고 소득감소는 다시 쌀생산 감소로 이어져 이중의 피해를 농민들에게 안긴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정부는 그러나 유예기간의 수입량에 대해서는 시장출하를 봉쇄해 쌀값 하락을 막겠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수입쌀은 모두 가공용·주정용으로 돌리겠다는 복안이다.
가공용쌀 수요는 올해 2백8만섬에 이른다. 쌀과자 등 관련식품과 술 원료인 주정용으로 쓰이는 가공용은 모두 통일미로 충당되고 있다. 이밖에 통일미는 연간 1백만섬이 더 출하돼 현재 6백10만섬인 재고물량은 2년후면 바닥이 난다.
96년부터는 가공용으로 일반미를 공급해야 할 형편인데 정부는 이때 95년부터 수입되는 외국쌀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1∼4%의 수입으로는 시장에 내놓을 여지가 없으며 이로 인한 쌀값 하락도 걱정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계산은 이렇게 산술적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쌀시장 개방이라는 사회심리적 충격파는 이농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거나 농촌에 남아있더라도 쌀생산을 포기하도록 만들어 농가소득을 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심화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곤란하고 따라서 쌀 최소시장 개방으로 인한 농가피해액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농촌경제연구원의 한 분석을 토대로 추산하면 쌀재배농가 피해액은 7년간 7천억원 내외,한해 평균 1천억원 정도로 예측된다.
농경연의 한 관계자는 『95년부터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의 차이만큼을 모두 관세로 물려 쌀시장을 개방할 경우 국내 소비량의 3∼5% 정도가 수입될 것으로 보고 그 피해액을 1조2천6백억원으로 잡았는데,최종합의된 수입물량이 1∼4%에 그쳐 피해액은 이것의 절반가량인 6천억∼7천억원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쇠고기·고추·감귤·마늘·양파 등 쌀 이외 품목이 농촌에 타격을 더 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쇠고기의 경우 95년부터 「특별관세」로 수입하고 2001년부터는 완전개방을 약속했으며,그외 농산물들은 97년부터 실질적인 수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심상복기자>
▷금융부문◁
금융부문은 쌀과 연계되어 대폭 개방될 것이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큰 피해가 없었다.
정부가 협상기간중 줄곧 『쌀을 지킬 수 있다면 다른 쪽에서는 양보할 수도 있다』는 자세를 보이면서 금융은 쌀개방을 막기 위한 「희생양」이 되는 것처럼 여겨져 왔었다.
그러나 쌀 때문에 금융쪽이 희생을 치른 흔적은 별로 없고 협상과정에서도 쌀과 금융의 연계문제가 심도있게 거론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14일 오후(한국시간 15일 새벽) 금융부문의 최종 양허계획서(국제적인 개방약속)를 가트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계획서에는 ▲외국은행이 국내에 지점을 설치할 때 우리 정부가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경제적 심사조항을 삭제하고 ▲외국의 금융 신상품 도입을 우리 국내법에 맞는 한 허용키로 하는 등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요구가 일부 추가로 반영됐다.
그러나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블루프린트(금융자율화·개방계획)의 UR 양허계획서 반영문제는 우리측의 입장대로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 등 6개항 외에는 추가로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서비스시장◁
우리가 이번 UR협상에서 자유화를 약속한 78개 서비스분야는 이미 자유화된 업종을 다시 대외적으로 약속한 것이고 나머지 5개 분야는 신경제 계획의 개방계획을 반영한 것이므로 새로운 부담을 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5년마다 협상을 계속하기로 함에 따라 자유화 약속대상 업종이 점차 확대되게 돼있어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없어도 점차 외국기업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통신은 내년 1월부터 부가통신사업(VAN)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전면 허용될 예정이어서 첨단기술과 다양한 서비스를 무기로 한 선진국의 VAN 사업자들이 신규시장 일부를 잠식할 우려가 있다.
건설은 외국인투자가 1백% 허용될 경우 경쟁력이 있는 일반토목부문은 영향이 적지만 고도의 전문기술이 필요한 부문에 외국업체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건설분야는 국내 업체의 미국·일본 등 선진국시장에 대한 진출이 쉬워져 상대적으로 활성화될 전망이다.
다른 산업보다 비교적 낙후돼 있는 유통업은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무장한 선진국 업체들이 진출할 경우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생계형 영세매장의 타격이 특히 우려된다.
▷공산품◁
공산품에 대한 관세인하 협상타결은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세계 각국의 관세가 현재보다 평균 33% 이상 낮아져 전자·철강·화학제품 등 우리의 주요 수출상품들이 해외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도 관세를 인하해야 하지만 우리의 경우 91년 가트에 관세양허계획을 제출한 이후 관세를 꾸준히 낮춰 현재 실질 관세율이 8.9%까지 낮아진 상태여서 오는 99년까지 관세를 10.6%로 낮추기로 한 UR협상 결과와 비교할 때 추가로 관세를 인하해야 하는 부담은 거의 없다.
▷반덤핑◁
반덤핑 조항은 덤핑판정시 수출가격이 원가이하로 판매되더라도 일정요건을 충족시킬 경우 정상적인 거래로 인정하는 등 수출국의 주장이 반영된 것과 함께 우회 덤핑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등 선진 수입국의 입장도 어느 정도 반영돼 타결됐으나 수출주도형인 우리 경제에는 일단 긍정적으로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 등 강대국 입맛에 맞게 휘둘러온 반덤핑 규제가 보다 명료하게 강화되어 이를 이용한 수입규제의 남발이 어느 정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92년중 반덤핑 등에 의한 수입규제 아래에 있는 수출은 우리나라 총수출의 8% 수준을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UR 협상에서 반덤핑 발동요건을 강화함에 따라 철강·전자 등 우리의 주력업종 수출신장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
▷지적재산권◁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그동안 미국·EC 등과의 잦은 협상을 통해 선진국 수준에 올라있어 이번에 타결된 내용들을 지키는데 큰 문제는 없는 상태.
오히려 UR 지적재산권 협상타결은 최근 떨어지고 있는 우리의 기술개발 의욕을 높이는 한편 선진국들도 우리에 대해 기술이전을 늘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즘은 우리나라의 새 기술과 상품을 동남아 등의 개발도상국들이 모방·불법복제하는 일이 잦아 골칫거리였는데 이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국제규범이 마련됐기 때문에 강력한 대처가 가능해졌다.
우리의 관련제도를 협정문과 일치하도록 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저작권법·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관세법 등은 이미 개정된 법이 정기국회를 통과했으며 내년중에는 ▲특허·상표 등 산업재산권 분야의 보호대상·보호기간 확대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기간 확대 ▲음반 소급보호와 관련한 로마 협약과 베른 협약 가입 등이 추진된다.
▷보조금◁
그동안 관행적으로 운영되던 보조금을 대폭 줄일 수 밖에 없게 됐다.
정부의 규제는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정책적 지원사업인 보조금이 끊기게 되므로 혜택을 받던 기업들은 더욱 힘들게 됐다.
특히 국산품 사용을 촉진하거나 수입억제를 위한 보조금이 완전히 금지돼 기업들로서는 더이상 정부에 인위적으로 수입품의 시장잠식을 막아달라고 기댈 수 없게 됐다.
또 농산물을 수출하는 업체에 대해 세금을 줄여주거나 일반대출금리보다 싼 자금(농산물 수출촉진자금)을 빌려주는 등의 특혜성 지원을 개선하지 않으면 상대국으로부터 보복조치로 상계관세를 얻어맞을 위험이 높아졌다.
▷섬유◁
쿼타제에 묶여 수출규제를 받고 있는 품목이 64개로 다른 개도국(말레이시아 28개,파키스탄 25개)에 비해 많기 때문에 UR 협상타결이후 쿼타가 풀리면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이후 가격경쟁력이 워낙 떨어져 상당수의 품목이 주어진 쿼타도 채우지 못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UR 협상타결 이후의 전망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쿼타제 하에서는 개도국의 저가제품과 정면 대결하지 않아도 됐지만 앞으로는 국제시장에서 물량제한없이 싸움을 벌여야 하므로 지금의 경쟁력으로는 밀릴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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