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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풀린 쌀 美,5%이상 잠식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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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동네 쌀가게와 우리의 밥상을 뒤덮는 美國의 칼로스 쌀(캘리포니아산 쌀의 상품명),우리 볍씨를 가져다 2,3모작으로 마구 길러내는 東南亞의 쌀.
정치적 요구를 안들어 주면 쌀수출을 않겠다는 외국들의「식량무기화」전략과 툭하면 사재기로 곡물가격 조작을 해대는 美곡물 메이저들….
최근 쌀시장 개방과 관련해 벌써부터 도처에서 언급되고 있는 시나리오들이다.
하지만 현재 세계 쌀시장의 실태는 이같은 걱정과 다소 거리가있다. 8일 세계시장에서 쌀거래를 하고 있는 국내 전문가들에 따르면 쌀시장개방 유예기간의 여부를 떠나 완전개방이 된다고 하더라도 농촌이 당장 황폐화될 가능성은 적다는 전망이다.
오히려 국내 농가나 정부가 개방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앞다투어 쌀농사를 포기하는 사태가 가장 큰 걱정이며 이 경우 앞서언급한 불행한 일들이 실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한해 생산되는 쌀은 총 3억4천3백90만t.
올해는 작황이 좋지않아 지난해보다 7백20만t 정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밀(5억5천9백30만t).옥수수(4억5천5백40만t)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곡물이다.
국가별로는 中國이 전세계의 36%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이 印度(9%).인도네시아(9%).베트남(4%).泰國(3.6%)등의 순이다.〈표참조〉 그러나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교역되는 다른 곡물과는 달리 쌀 교역량은 전체 생산량의 4%에 불과한 1천6백만t정도다.
쌀생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기후.물공급등 재배조건이 까다로워 자급자족형이 많다.
미국과 2,3모작이 가능한 태국등 동남아 일부 국가들은 이의예외로 美國이 우리와 日本과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쌀개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美國은 전체 생산량(5백10만t)의 절반이 넘는 2백70만t의 물량을 수출하고 있는데 美國내 최대 쌀생산지인 아칸소州(전체의 40%생산)는 다름아닌 클린턴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전까지주지사를 맡았던 지역이다.
美國내 주요 쌀생산지역인 아칸소.미시시피.미시간.루이지애나州등 남부사람들의 쌀시장개방에 대한 열정들은 米質문제를 등한시한것이라는 지적이다.
美國 남부지역에서 생산하는 쌀은 전세계에서 교역량의 90%이상을 차지하는 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인티카계열(안남미종류)이며韓國.日本.中國 일부에서 먹는 둥그렇고 찰진 자포니카계열의 쌀은 캘리포니아州에서만 생산한다.「칼로스」라는 상 표의 쌀이 바로 그것이다.
또 약1백만t의 캘리포니아産 쌀 중에서도 60%는 내수용이고40%만이 수출될 뿐인데 쌀시장개방을 노려 현재 캘리포니아내 40만에이커의 경작지를 아무리 늘린다해도 지역여건상 15만에이커이상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향후에도 55만t이상 수출하기 어렵고 이 물량을 日本과우리나라로 나눠 볼 경우 국내에는 많아야 20만t정도가 들어오는 셈이다.
이에따라 우리나라 쌀시장에 대한 개방유예기간이 끝나고 2000년대 들어 관세에 의한 전면적인 개방이 이뤄진다해도 美國쌀이국내 소비량의 5%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 국내 쌀무역상들의 견해다.
『美國 남부지역이나 東南亞.中國 남부지역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품종으로 바꿔 대량생산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얼마전 美國 쌀시장에 대해 현지조사를 벌였던 三星物産 식량팀 崔모대리(34)의 생각은 다르다.
『자포니카계열의 쌀은 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월교차가 있는 지역에 적당하지 열대지방에는 맞지 않습니다.美國 남부사람들이 안정된 판로가 확보돼 있는 인디카계열의 쌀생산 대신 자포니카계열의 쌀로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으며,일부에 선 몇해전부터 자포니카계열의 쌀을 기후에 맞게 변화시킨「미디엄 그레인」의 생산을 시도하고 있으나 우리 입맛과는 거리가 한참 먼 상태입니다.』 이와 함께 1백년이 넘는 역사에다 세계농산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카길.컨티넨틀.가낙.벙기社와 같은 유수의 美곡물메이저들과 쌀개방의 관련성은 미지수.교역량 자체가 워낙 적어큰 이익이 나지 않는데다 그들의 장점인 선물거래방식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어서 카길.컨티넨틀.드레이피스등 3개社만이 美國 내수를 위해 일부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쌀의 국제거래는 과거 東南亞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의 소규모 현물 무역상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나 절반이상이 정부對 정부의 거래로 이뤄지고 있어 입김이 세지는 않다. 이처럼 상황이 불리한 것 만은 아니다.
그럼에도『국제 쌀 값이 국내 쌀 수매가의 20%도 안된다는데자유화되면 어디 경쟁이나 되겠느냐』『어차피 쌀시장이 개방된다니논에다 공장이나 지어 산업화로 나가는 길 밖에 없다』는 식의 지나친 위기의식이 계속 확산된다면 이는 최소한 의 쌀생산기반마저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생산량이 일정 수준이상 떨어져 美國등 외국의 수입량으로도 국내소비량을 못채우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하며,이에 실패할 경우 우리는 해마다 돈보따리를 싸들고 전세계를 누비면서도 제대로 쌀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때문에 국내 쌀 무역상들은『쌀의 식량무기화니,국내시장의급속한 잠식이니 하는 문제는 외국이 만들어 내는 것 보다는 우리가 자포자기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며『일정수준의 영농기반을확보하면서 품질.생산성향상 노력을 계속할 경우 희 망의 여지는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李孝浚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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