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오늘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2주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59주년 되는 날이다. 해방될 때 우리 조상 모두 기쁨에 용약하고 마음은 마냥 설렜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우리 역사는 설레고 기쁜 일보다 나무라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해방 직후 분단과 좌우 대립으로 어지러웠던 한반도는 급기야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종전 후 대한민국은 1950년대에 자유당 독재, 60년대에 군부독재, 70년대는 유신체제를 경험했다. 80년대는 광주항쟁이 좌절되고 다시 엄혹한 군부독재를 겪었다.

하지만 이러한 야만의 정치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 이미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해 온 국가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반면 60년대까지 남한보다 잘살았던 북한은 80년대에 남한의 경제력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지기 시작했다. 발전의 격차는 그 뒤에도 지속됐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온갖 역사의 굴곡을 뚫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모범국으로 우뚝 섰다. 한편 북한은 억압과 빈궁으로 묘사되는 ‘실패한 국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62년 전 오늘 똑같이 해방의 감격을 누렸던 남한과 북한이 현재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학은 최대원인이 경제 체제라고 가르친다.

59년 전 오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국의 입김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했다. 한 달도 안 돼 북한 정부가 수립되면서 소련의 입김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했다. 그 당시 시장경제가 뭐고 계획경제가 뭔지 모르는 남북한에 외세가 일방적으로 부과한 경제 체제가 결과적으로 양쪽의 진운(進運)을 갈랐다. 자유냐 평등이냐, 시장이냐 계획이냐의 양자택일식 체제경쟁이 전자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박정희 개발독재’는 중국이 본받고 있는 경제개발 모형이다. 반면 ‘김일성 개발독재’라는 말은 없다. 이것도 경제 체제의 차이를 반영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오욕의 역사다” 라는 평가는 80년대까지는 일면의 적합성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렇게 폄하한다면 역사의 무지를 드러내는 얼뜨기 같은 소리다. 처음에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가 희생된 것만 주목하고, 나중에 성장 덕분에 민주주의가 달성된 역설적 사실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세습독재는 성장을 못 이루고 따라서 자생적 민주주의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3위의 총생산과 2만 달러의 1인당 소득을 자랑한다. 이 경제력이 각 분야를 상향시키는 힘은 엄청나다.

물론 4류 정치, 3류 행정, 성장잠재력 저하, 빈부격차, 지나친 집단이기주의를 비롯한 많은 문제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법치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더 잘 개화시켜 나간다면 우리나라의 역동적인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 대한민국 체제의 햇볕을 북한에도 쐬는 것이 참된 햇볕정책이다.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나라가 있어 진정 고마운 마음’을 매일 새롭게 할 것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이제 나라를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는 항심(恒心)은 지니도록 하자.

안국신 중앙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