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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약,과감한 정리를(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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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여당이 14대 대선 공약사업 1백29건을 이행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나아가 아직도 이행대상으로 남아있는 1천97건도 정밀검사해 실행 불가능한 사업을 더 가려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약속을 깨는 아픔은 잠시지만 당초부터 무리하게 채택한 선심공약을 정책에 반영하려다 국가재정을 병들게 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 우선 표부터 얻어놓고 보자는 선거전술에서 비롯된 공약남발은 14대 대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본다.
앞으로 이행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사업은 누가 보아도 재원조달이 불가능하거나 효율성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업,또는 현실여건에 맞지 않는 사업을 선정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이미 제외가 확정된 사업도 이 기준에 따라 골랐을 것이다. 남아있는 사업을 정밀검사하면 실행을 보류해야 할 사업은 더 나오리라고 본다.
이행대상에서 제외된 동서고속전철은 기존 철도의 연장이나 고속도로의 확장조차 요원한 상태에서 너무 성급하게 선정된 과장된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좋으나 우선순위를 잘 가려야 한다. 남아있는 1천97개 사업도 재원조달과 효율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가리면 요·불요의 판단이 서게 될 것이다.
이들 사업을 실천하려면 현 대통령의 임기 5년동안 1백65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는게 국무총리실의 판단이다. 매년 평균 35조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94년 예산안에 잡힌 경제개발비와 사회개발비는 총규모는 13조원이다. 경제·사회개발비 전액을 선거공약사업에 투입해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는 예산사업 5백39건을 연차별로 추진하면 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 같으나 앞서 말한대로 소요재원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무리다.
선거공약은 애당초 신중하게 제시되는 것이 제일 좋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실천 불가능한 것을 빨리 골라 취소하는 것이 차선책은 될 수 있다. 현 대통령은 인사에 실수하면 안된다는 말을 여러번 했지만 첫 조각때 말썽이 된 인사 일부를 신속히 교체한바 있다. 예산사업도 마찬가지다. 불가능한 일인줄 알면서 자신의 말에 구애되어 집착하다 보면 더욱 난처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
공약을 깨는 행위를 과거에는 무조건 부도덕시했으나 공약 자체가 허구성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그것을 깨는 행위가 오히려 정치적 결단을 돋보이게 하는 면도 없지 않다.
바로 1년전 각당 후보들은 화려한 공약을 수많이 내놨으나 당선자건 낙선자건 실천 불가능한 것들이 많았다. 이제는 말을 절약하고 행동을 보일 때다. 이런 때에 실천하기 어려운 공약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다. 재원조달이 어려운 사업은 비판을 각오를 하고 과감히 전기할 것을 재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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