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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있는고향>석류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동시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으로부터 첫눈이 왔다는 즐거운 연락이 답지한다.눈은 참으로 묘한 능력이 있다.
사람들을 애 어른 할 것없이 들뜨게 만들기 때문이다.그리하여감격한 목소리로 평소 잊고 살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도록 한다. 바람조차 실내로 들어오고 싶어 마냥 창문을 두드리는 시간.
동짓달 바람소리를 벗하여 불현듯 따끈한 차 한잔이 그리워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차가 있고 분위기가 있다.차 마시는때도 그러하리라.사는 일이 바쁜 탓에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누구인들 몸과 마음을 한가로이 쉬며 고요속에 차 마시는 즐거움을마다하겠는가.
공통적으로는 초가을 툇마루에 앉아 흘러가는 흰구름을 바라볼 때나,깊어가는 가을밤 섬돌 밑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리고 저멀리 둥근 달 아래로는 기러기 몇마리 무리지어 날아가는 모습이바라다보일 때,또는 어제 오늘처럼 서설이 내려 세상을 아름다운은빛으로 바꾸어 줄때 너나 없이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인생을 관조하고 싶어질 것이다.
정녕 우리 모두 가끔은 차 한잔으로 멋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이미 석류꽃도 지고 열매도 걷이가 끝났을 때이나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레먼차를 대신해 우리 한국사람이 마시기 적합한 맛좋고 향기로운 차로 석류차를 권한다.
금앵(金櫻)이라 불리기도 하는 석류의 기미는 따뜻하고 신맛에약간은 떫은 느낌이 있다.
예부터 설사.복통.대하증등의 수렴제로,혹은 백충.촌충 따위 조충(條蟲)의 구충약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지혈.지사(止瀉)의 효능도 있어 사리(瀉痢.설사)나 혈변(血便)증상을 다스리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8~9월 사이 석류 열매는 성숙함을 이기지 못해 가슴을 연다.이 무렵 그를 따서 겨울나기의 방편으로 김치를 담그듯 석류차를 만들도록 한다.
자칫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할만큼 보석인양,별인양 반짝반짝 빛나는 알갱이를 제거하고 껍질만을 잘게 썰어 햇볕에 잘 말려 약재로 쓰거나 차를 내어 마신다.
말리지 않고 유자처럼 꿀이나 설탕에 재었다가 뜨거운 물에 풀어 마시는 방법도 있다.
가을문턱에 만들어 두었다면 지금쯤 시면서 달고,달면서 조금은떨떠름한 석류차의 미각을 즐기기에 충분할 터.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추운 겨울밤 가족들과 정담을 나누며 음미할 수 있는 차로 석류차는 그 어떤 것에도 뒤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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