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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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어머니(37) 손바닥으로 터진 입술을 가리며 서서 지상은 오카다를 바라보았다.끈끈하게 입가에서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찢은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오카다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지상에게로 다가왔다.
『다른 조선인에게 네가 왜 맞았는지,말을 해도 좋다.너는 이곳의 규칙을 어긴 거다.규칙을 어기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얼마든지 알려도 좋다.』 지상이 고개를 저었다.천천히,두어번.
『무슨 의미냐?』 뻑뻑하게 굳은 턱을 움직이며 지상이 조그맣게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굵고 시커먼 눈썹을 꿈틀거리며 오카다가 눈을 희번득거렸다.
『가라,가서 일해라.』 사무실을 나온 지상은 공장으로 가지 않고 숙소 뒤쪽으로 걸었다.유리문을 향해 바라보고 있던 오카다가 소리도 요란하게 드르륵 문을 열었다.그가 밖을 내다보며 소리쳤다. 『공장으로 가라는데 너 지금 어딜 가는 거냐.』 지상이 돌아섰다.눈이 마주친 오카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 자식이,지금 뭐가 좀 모자란다는 얼굴 아냐! 돌아가서 일을 하란 말이다.』 지상이 낮게 말했다.
『얼굴을 좀 씻고 가겠습니다.』 『반도놈의 새끼.』 아무 말없이 지상은 몸을 돌렸다.병신 보고 병신이라고 해봐야 입만 아프지.섬나라에 사는 놈이 섬놈인 거야 분명하고 나야 반도에서 사니까 반도놈.
천천히 우물가로 걸어간 지상은 검붉게 핏자국진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드높게 맑은 가을날 오후였다.햇빛 때문인가.피잉 현기증이 왔다.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펌프 손잡이를 잡았다.
펌프물을 퍼 올렸다.나무로 된 물통에 물을 받아 그는 쭈그리고 앉아 손부터 씻었다.벌겋게 핏물이 번져나갔다.
조심스레 두 손으로 물을 퍼 올려 그는 얼굴을 씻었다.입안이터지고 부어 올라 있었다.혀를 가만히 굴려서 지상은 입안을 더듬어 보았다.양쪽 어금니 살이 터져 있는 게 느껴졌다.
어머니.그래야겠지요? 이 정도 일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내야겠지요.그는 욱신거리는 턱의 통증을 참으며 부걱부걱 얼굴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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