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난데없는 세금 독촉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며칠전 우리 집에 체납세금 독촉장이 담긴 한 통의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의 주소지 관할 洞사무소가 우송한 이 독촉장은 87년10월에 냈어야 할 자동차세 8만7천9백70원을 11월20일까지 납부하라는 통지였다.당초 세액은 7만3천1백20원이었는데 체납에 따른 가산세가 1만4 천8백50원이나 얹혀있었고,이 독촉장 뒷면에는「지정된 기한 내에 납부하지않으면 납세의무자의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경고문까지 인쇄돼 있었다. 평생 세금 한번 안내본 적이 없고 독촉장을 받아본 일도없던 터였다.따라서 컴퓨터로 처리된 이 독촉장을 펴들고 내가 맨처음 한 일은 집사람에게『도대체 살림을 어떻게 하길래…』라고역정을 낸 것이었다.
『세금은 안내본 적이 없는데…』라고 말꼬리를 내린 집사람은 서둘러 영수증 다발을 뒤지기 시작했다.그러나 이사할 때 뒤죽박죽이 되면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6년전의 종이쪽지 한 장을 찾아낸다는 건 무리였다.집사람은 거듭『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에 찬 항변을 해댔으나 문제는 그것을 입증할 영수증이없는 것이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세금이나 체납하면서 살다니…』하는 느낌 때문이었다.그리고 그것은 이내 서운함으로 이어졌다.체납세금이야 납부하면 된다지만,수납되지 않은 세금이 있는데도 6년동안 단 한차례도 통지나 독촉을 하지 않다가 어느날 불쑥 죄인취급한 것 같은 관청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한동안 소동을 벌이다가 영수증찾기에 실패한 집사람이『독촉장이이상하다』고 말했을 때에야 나는 냉정을 되찾고 문제의 통지문을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아닌게 아니라 문제가 있었다.우선 이자동차세는 설사 우리가 납부하지 않았다 하더 라도 조세시효인 5년이 넘은 것이었다.다시 말해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라는독촉이었다.게다가 이 독촉장은 자동차세 승계규정에 따라 그 자동차의 現소유주에게 고지돼야 할 것이었다.우리는 이 자동차를 88년에 팔았고,그때 새로 산 차도 92년에 또 다른 차로 바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독촉장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이리 저리 경위를알아보고「내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내 주소를 추적해 독촉장을 발송한 洞사무소 직원의 설명은 이렇다.체납세금 일제정비기간이라 했다(이때 발송된 독촉장은 서울에서만 5백만건이다).조세시효가 지난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구청에서 내려보낸 체납자 명단이라 그냥 봉투에 담아 발송했다고 했다.컴퓨터 입력과정에 문제가 있어 前소유주 명단이 뽑힌 것 같다고 했다.소유주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컴퓨터 입력작업이라면 세금 납부여부인들 정확히 입력되었겠는가.
이 소동중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경우가 한 두건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조세시효가 지난 독촉장 송달이 수두룩했고 심지어 그중에는 「재산압류」엄포에 놀라 이미 세금을 낸 사람도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시중에는 영수증을 잃어버려 덤터기 쓰는 사례가 적지 않다.난데없는 독촉장이 날아들어 어렵사리 영수증을찾아들고 가 정정한뒤 돌아왔더니 며칠후 또 독촉장이 날아든 일도 있었다.분명 어디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 날아든 독촉장봉투에는 1백10원짜리 우표가 붙어있었다.우리가 낸 세금일 것이다.또 누군가 이사간 내 주소를 추적해내 봉투에 수신인 주소를 쓴 뒤 발송도 했을 것이다.바로 人力의 낭비다.그런 독촉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리저 리 다이얼을돌려 알아봐야 했을 것이다.그것도 돈이요,허비한 시간도 따지고보면 돈이다.그야말로「우째 이런 일이…」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컴퓨터에 입력이 제대로 안됐다.조세시효가 지난 것까지 싸잡아 명단을 뽑기도 했다.
***行政신뢰도 떨어뜨려 또 잘못돼 있는 줄 알면서도 독촉장을 발송했다.모두 무책임.무사안일이다.이 셋 가운데 한 군데에서만이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손실.낭비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공직자들의 公僕으로서의 사명감과 서비스정신이 행정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그것은 행정에의 신뢰로,정부에의 믿음으로 직결된다.「伏地不動」,그 病因진단과 치유책 개발이 시급한 때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