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시 한국공관(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급. 수송부대사령관 수신. 주월 한국대사 발신. 사이공의 사태급변으로 주월 한국대사관,대사관 연락장교 및 통신요원 2명 긴급 철수함. 통신장비 파기함. 10시이후 제반 행동지시는 본국 지시를 받을 것.』
1975년 4월28일 오전 9시 사이공에 있던 주월 한국대사관이 폐쇄되기 직전 대사관에 파견근무중이던 2명의 통신요원은 사이공을 벗어나 있던 LST에 이런 내용의 무선전신을 보내고 중파송신기를 끌어내 도끼로 두들겨 부쉈다.
이와함께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대사·공사·참사관 등 대사관 간부들은 게양대에서 태극기를 내렸다. 월남전에서 주월 한국대사관의 이같은 마지막 모습은 폐쇄를 끝까지 지켜보던 한 한국특파원에 의해 생생하게 전달됐다.
월남전의 패배는 이를 주도적으로 수행했던 미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함께 참전했던 한국에도 만만찮은 후유증을 남겼다. 보트 피플 문제나 한국인과 월남인 사이에 태어난 2세들의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는 것도 월남전에 있어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한다.
월남전이 끝난후 새로 성립한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은 그동안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분야에 걸쳐 국제사회에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 부심해왔다. 구 사이공의 독립궁 뒷담이 끝나는 웬 주가에 있던 한국대사관 건물을 호치민의 생일을 기념하는 「5·19유치원」으로 바꾸고 주로 한국·월남 2세들인 어린이들의 양육장소로 사용해온 것도 새모습의 베트남에서 한국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대지 1천5백평,건평 6백여평의 구 주월 한국대사관 건물은 본래 19세기초 프랑스의 원조로 성립된 레이 왕조의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이 구입해 대사관으로 쓰고 있었다. 작년 12월의 정식수교와 함께 그 건물이 18년만에 주호치민시 한국 총영사관으로 탈바꿈해 19일 현판식을 갖고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니 한국과는 질긴 인연인 셈이다.
과거는 잊으려한다해서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저절로 잊혀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월남전에서 한국이 입었던 상처도 그중의 하나지만 호치민시의 한국 총영사관 개설과 함께 과거의 기억들은 창조적이며 발전적인 새역사의 창조를 위해서만 유효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