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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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어머니(32)요시코의 얼굴을 지상은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런 이야기는 편지에 쓰는 것이 아니라는말을 다시 한번 되뇌는 요시코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모르지 않았다.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미 그런 말을 교관으로부터듣지 않았던가.
이곳은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이다.그러므로 공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 밖에는 비밀로 해야 한다.어디 나가서든,다른 사람에게든 공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왜냐하면 이것은 군사기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도쿠가와의 영을 모신 동조궁에 가면 원숭이가 세 마리가 있다.하나는 눈을,하나는 귀를,하나는 입을 가리고 있는 세 마리의 원숭이다.너희들도 마찬가지다.이 공장에 관해서는 그 원숭이 세 마리와 다를 것이 없다.너 희들은 본 것도 못 본 것으로,들은 것도 못 들은 것으로,그래서 아무 것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알겠느냐? 만약 이것을 어길 때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는 너희들의 상상에 맡긴다.우리는 지금 천황폐하를 위한 성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 지 말아라! 그때의 그훈시를 생각하며 지상은 요시코에게 건넨 편지를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크게 잘못된 것을 적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오히려 여기서 지내기가 편하다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었던가.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자기가 생각하듯 실제로 여기 와 있는 많은 조선인징용공들이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쓰느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상이 천천히 말했다.
『여기서 지내는데 아무 불편이 없으니,안심하시라는 그런 이야기를 썼는데요.』 요시코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탄광으로 끌려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서 벗어난 것만도다행이었다.그런 두려움에 비하면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이란 모두에게 차라리 즐거움이랄 수 있었다.게다가 내놓고 말은 하지 않더라도,일본 공원들 가운데 여공들이 많다는 것도,그들에게는 생각지 못했던 즐거움이 되고 있었다.비록 말이 잘 통하지않아서 손짓 발짓을 해야 한다고는 해도.
요시코가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뭐 좋아요.됐습니다.』 『잘못된 게 있으면 다시 쓰도록 하지요.』 『아니예요.괜찮으니까,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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