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변호사,개방시대 국제분쟁 해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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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내에서 기업변호사 또는 국제변호사로 불리는 변호사들의 수는2백여명.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해외진출도 늘어나면서 이에따른 국내외 분쟁도 증가, 이들 변호사의 활동영역도 갈수록 넓어지고있다. 주고객은 기업으로 세금.부동산.특허.금융등 기업의 모든분야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는 물론 사전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도 이들의 역할이다.
최근에는 전문성이 깊어지면서 세금 담당.특허담당.기업의 흡수합병(M&A)담당.반덤핑 담당.통상 담당등 각자의 고유영역이 세부적으로 나뉘어가는 중이다.지난90년 국내 재벌회사중 하나가東歐국가와 진출계약을 할때 하나의 계약조항을 잘 못 써 기계류대금 1억2천만달러를 떼였다.
법률지식만 있었다면 당연히 피했을 것을 값비싼 비용을 치르는것이다. 국가간의 마찰이 확산되면서 국제변호사의 역할도 돋보인다. 현대자동차의 캐나다 반덤핑 소송은『캐나다는 엑셀과 같은 소형 승용차는 생산하지도 않는데 무슨 산업피해냐』는 반증으로 간단히 해결됐다.또 한국 수출의 장래가 걸렸던 對美반도체 덤핑(담당 金碩漢변호사)이나 철강 덤핑분쟁도 현지 변호사 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다.미국 법원으로부터 1심에서 3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던 주방기기 제조업체 S社는 국내 법률회사의 도움으로 2심에서 판결을 뒤집기도 했다.그래서 기업들은 갈수록기업변호사의 유용성을 깨닫고 있다.요즘 합작계약을 할때도 최고경영자들이 상호지분율 같은 대강만 정하고 기념사진만 찍은뒤 나머지를 기업변호사의 몫으로 넘기는 이유도 無知로 인한 비용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기업들만이 아니다.우리정부도 유럽과의 물질특허및 지적 재산권협상에서 두가지로 해석될수 있는 모호한 조항을 그냥 넘기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근 일본이 韓日간의 경제협력확대 분위기에 편승,『물질특허를유럽수준에 맞춰 보호해달라』는 요구를 해와 자칫 한국의 농약산업이 일본의 공세에 무너져내릴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래서 申熙澤 국제변호사는 89년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정부의 우루과이라운드(UR)서비스협상의 정부측 업저버로 무료봉사하고 있다.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정부의 실수를 막기 위해서다.
『당시 칼라 힐스 미국대표를 비롯,외국의 협상대표들은 대부분변호사였습니다.그들은 계속 같은 일만 맡아온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기업변호사들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수입도 늘고 있다.
지난달 22일 국세청이 조사발표한 종합소득세 변호사 부문 고액납세자 명단에서 金&張 변호사 사무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지난해에 이어 1위를 고수한 金永珷(7억5천7백만원),2위의李載厚(5억2백만원),4위의 張秀吉(4억2천9백만원),5위의 趙大衍(4억1천9백만원)변호사등이 그들.
이들은『고객이 국가간 거래를 하는 기업이어서 세원 탈루는 생각도 못한다』고 푸념이다.
국세청은 3위를 차지한 某변호사에 대해서는 소득세 조사를 벌였지만 이들 4명에 대해서는「당연히 벌어들일 만한 소득」으로 인정해 조사를 면제해 주었다.
그러나 기업변호사들의 화려한 활동과 높은 수입 뒤에는 엄청난고통도 있다고 한다.
어렵다는 사법시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우수한 성적으로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이들이지만 막상 법률회사에 들어오면 밑바닥생활부터 해야한다.
원고정리 잡무를 도맡고 협상 테이블 말단에 앉아 노련한 선배들의 기술을 배우는데만 보통 5년이 걸린다.그후 2년정도 유학을 떠나 국제감각을 익혀야 독자적으로 사건을 맡는「진짜 변호사」가 된다.
***“실력만이 사는길” 출근은 오전9시30분.그러나 대부분법률회사들이 건물내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저녁을 먹고 집으로돌아가는 시간은 밤 10시가 넘는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출신은 두갈래로 나뉜다.
국내 변호사 자격증을 딴뒤 법률회사의 변호사가 되거나 다른 하나는 미국등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뒤 국내 법률회사와 계약을 맺는 것.그러나 곧 국내의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이러한 구별은 무의미하게 된다.
변호사 세계는 오로지 실력만으로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취재도중 만난 기업변호사들은 서울서초동 법원 주변의 변호사들과는 딴판으로 한결같이『국내변호사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가 법률시장을 잘못 개방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있고,자본주의로 치닫는 中國이 해마다 수천명의 변호사를 양성하며 그 절반정도를 해외에 내보내 국제감각을 익히도록 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李哲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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