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노동의식 변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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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매일 새벽 짐짝처럼 혼잡한 통근기차에 황급하게 오르는 나의모습은 어쩌면 그 옛날 신대륙으로 가는 노예선에 실린 흑인노예보다 더 처량해 보인다.가족들과 식탁에 마주앉아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소박한 희망도 나같은 회사원들에게는 아득 한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日本의 한 광고회사 직원인 야기 요시노리(八木義德)씨는 최근 과로로 사망하기 직전 자신의 비극적 종말을 예감한 것처럼 일기장에 이같이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을 적어놓았다.日本에서는 매년 야기씨처럼 과로로 사망하는 회사원수가 교통사고 사망자수와 맞먹는 1만명에 달하고 있다.최근 몇년동안 부쩍늘어나고 있는 회사원들의 과로사 문제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식 경영의 특징인 종신고용의 대가로 회사에 묵묵히 자신을 바쳐온 회사원들의 행동양태를 바꿔놓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사회의 국제화와 함께 20년만에 겪는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 일본인들의 노동의식에 일대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인들의 자신보다 회사를 앞세우는 생활태도는 이미 퇴색한지오래됐고 심지어 회사측의 부당한 대우 시정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법에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최근 일본에서는 데이코쿠 호르몬 제조회사에 다니는 하루오 가와구치씨가 일상적인 순환근무에 따라 가족들과 6년동안 떨어져 살아온데 대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사측은 회사 나름대로 거품경제의 호시절이 지나가면서 과도한임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기퇴직제.신규채용 감축.강제할당 휴무제 등을 도입해 평생직장 개념보다는 효율성에 입각한 생존전략을추구하고 있다.
이밖에 불경기에 대비한 조직축소에 따른 무임소 직원이 늘고 본인의 희망과 완전히 배치되거나 전혀 생소한 업무를 맡게 되는경우도 회사원들에게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다.특히 조기퇴직제의 도입은 퇴직자들 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회사원 들에도 영향을줘 심지어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東京에서 개업하고 있는 정신과의사 세키야 마사루(關家克)씨는 5년전보다 2배가 증가한 하루 10명의 회사원들이 과중한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을 찾아오고 있다고 말한다.이들 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은 장래에 대한 불안에 따른 자신감 상실이다.세키야씨가 전하는 한조기퇴직 회사원의 사연은 샐러리맨의 불안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기퇴직한 이 환자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차마 가족들에게 하지 못해 한동안 매일 아침 커피숍으로 출근,시간을 보내다지쳐 병을 핑계로 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가짜 진단서를 발급해달라고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회사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함께 회사원들의 회사에 대해 헌신하는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경제력 쇠퇴의 한 징후며 더욱 심각한 불황이 찾아오게 되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동경대학 사회역사학과 구사미츠 도시오(草 密俊夫)교수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高昌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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