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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당한 마라토너 김원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42.195㎞의 고독한 레이스를 끝낸 마라토너에게 찾아드는 것은 무엇일까.
환희와 갈채,승리의 월계관….
아니다.
승자의 화려한 웃음뒤에 배경으로 설 수밖에 없는 절대 다수의선수들에게 엄습하는 것은 고달픈 생활고란 끝모를 또다른 레이스다. 30세의 노장 마라토너 金元植은 지난달 30일 두달여 몸담아온 건강식품회사 (주)코리맨으로부터 전화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춘천에서 열렸던 孫基禎세계제패기념 제47회 전국마라톤선수권대회(29일)에 참가했다 상경한 이튿날 일이었다.
회사의 경영악화란 항변하기 힘든 간단한 이유에서다.
지난 8월20일 매달 1백만원과 건강식품을 2년동안 지원받기로 계약,지난해초 동양나일론 팀해체이후 모처럼 안정된 직장에서운동을 계속할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모두 허사가 돼버린 것이다.
춘천의 전국대회에서 완주하지 못하고 30㎞지점에 서 주저앉은 까닭일까.
지난 7월 갑작스레 위암수술을 받은 아버지 金光濟씨(62)의치료비 마련(1천만원)과 병간호로 훈련과정이 불충실해 좋은 성적을 못낸것이 못내 金의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1천5백m 한국신기록(82년,3분50초3)을 수립하며한국육상의 기대주로 각광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한낱 보잘것 없는 퇴물 마라토너로 전락하는 것인지.
자신은 있다.
하루 50㎞씩의 꾸준한 강훈,국제적으로 볼때 결코 많다고 볼수 없는 나이와 오기로 똘똘 뭉친 정신력등.
하지만 이제 7개월된 딸 지민과 아내,생계비를 위해 유일하게출근하는 어머니(백화점 청소)와 마주할 때마다 金은 마라토너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死點 35㎞를 넘나드는 심정으로 자괴심에 빠진다. 왜 육상을 시작했고,왜 이제껏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김원식은 달린다.마라토너는 오직 기록으로만 말할수 있기 때문이다.
〈劉尙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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