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TV] 살인미소 김재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8면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안하무인 격인 대학생 형준(김재원)이 자신의 외제차에 흠집을 낸 여고생 하영(하지원)과 차량 수리비 대신 1백일간 노비계약을 맺은 끝에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그 환한'살인미소'의 어디에 '싸가지 없는' 얼굴이 숨어있는 걸까. 두 배역 사이의 단절된 이미지 때문에 고심하던 기자에게 해답을 던져준 것은 물론 그 자신이었다. "외제차를 몰고 다니지만 형준은 '날라리'로 단정짓기는 어려운 캐릭터예요. 돈도 많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가깝죠. 여자에 별로 관심 없는 점이 실제의 저랑 비슷해요. 고교 때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다른 반 여자애들이 와서 말을 시키면 대답도 안 했어요. 숫기가 없었던 거죠. 근데 다른 애들이 보기에는 시쳇말로 '재수없다'고 할 만했죠. 형준도 그런 식으로 '네 가지가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된 인물로 보여요."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하영을 괴롭히다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지는 형준의 변화에 수긍이 갔다. 그 또래 젊은이들의 새로운 화법인지 그는 제목에 나오는'싸(4)가지'를 줄곧 '네가지'라고 표현했다. 스스럼없는 말투로 자신의 이미지를 하나씩 벗어던지는 그에게서 기자가 발견한 뜻밖의 모습도 네 가지쯤 될까. "본래는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운동도 좋아하고, 제복도 좋아해서요. 소풍갈 때 교복을 입고 가는 애가 전교에서 손꼽을 정도였는 데 그 중 하나가 저였어요. 운동은 태권도.합기도. 특공무술 같은 것을 8년쯤 했어요. 그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은 군대도 다 공수부대로 갔죠." 전매특허인 부드러운 미소와는 사뭇 다른 이력이다. 김재원은 어머니와 누나의 권유로 연극영화과에 입학했고, 한 달 만에 동네 의사의 소개로 연예기획사에 캐스팅됐다. "이 일 하면서 제일 좋은 게 부모님께 가끔 용돈이라도 드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에요. 부모님께 손벌리기 싫었거든요." 부잣집 응석받이처럼 보이는 허여멀건 얼굴과는 달리 그의 속내 역시 깊다. "제 또래치고는 경험이 많은 편이에요. 아르바이트를 상당히 많이 해서 어른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거든요. 고시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고시 공부하는 형들, 음식점 서빙을 하면서는 주방장 아저씨나 사장님들…" 교사 출신인 부모님이 독립심만큼은 단단히 물려준 듯했다. 물론 미소와 신체조건도 함께다. "어머니가 항상 긍정적인 분이라서 잘 웃으세요. 키가 큰 건 아버지 덕분이죠. 아버지가 1m92㎝, 제가 1m83㎝이니까 제가 한참 작죠."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미소 한 방으로 삽시간에 떠오른 벼락 스타다. "드라마는 다음 회에 잘하면 앞에 연기 못한 게 잊혀지지만 영화는 한 편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내 사랑 싸가지'는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때 딱 드라마 같았어요. 아직 신인이고 연기를 잘 못하는데, 로맨틱 코미디라면 좀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같은 20대인 신인 신동엽 감독과의 작업은 그런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제 애드립이 상당히 많아요. 몇 살 차이 안 나는 형이니까 영화에 대한 얘기를 줄곧 편하게 했죠. 원래 제 별명이 '김작가'거든요. 제 입에 안 붙는 대사를 제 식으로 많이 고쳐요." 이쯤에서 그의 속을 긁을 만한 말을 꺼냈다. 인터넷에 오른 팬들의 글을 보니까 진지한 연기는 언제쯤 보여줄지 궁금해 하더라고. "저요, 특별한 일 없으면 계속 연기할 거예요. 정말 맛깔나는 연기는 적어도 서른은 넘어야 나오는 것 아닐까요. 아직 커가는 과정에 있는 배우로 봐주세요. 가마에서 익어가는 도자기라고요." 보기 좋은 미소를 흐트리지 않으면서 그는 '술의 나라'같은 출연작이 별 호응을 얻지 못한 작년이 오히려 "의미있는 해였다"고 덧붙였다. "만족하면 발전이 없으니까요." 그에게서 가장 뜻밖인 얘기는 제복이 입고 싶었다는 것도, 철부지가 아니라는 것도, 벼락스타임을 잘 안다는 것보다도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해요. 힘든 일이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얘기를 읽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요. 좋은 생각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닐까요." 올 봄 한.중 합작드라마 '북경 내 사랑'으로도 팬들과 만날 그의 변신이 기대된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