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being] 만두 빚는 스님, 無心의 손맛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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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에도 설이 찾아왔습니다.

속세 사람들처럼 즐길 순 없지만 어린 스님들의 마음엔 작은 동요가 일지요.

이럴 때면 큰 스님들은 별식을 준비해 다독입니다. 별식을 만드는 과정도 수행의 일부니까요.

"20여년 전 속리산 법주사에서 공부를 할 때 이야긴데…, 아마 이맘때일 겁니다. 하루는 암자에 있는 비구니들이 솔솔 냄새를 풍기며 만두를 빚더라구요. '오늘은 맛있는 만두 공양을 받겠구나'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데… 웬걸, 큰 스님과 중진 스님들만 초대해 만두 공양을 하더라고요.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 초대에 빠진 학생 스님들과 공모해 비구니들 고무신을 몰래 걷어다가 우물에 넣어버린 일이 있었지요."

겨울 가뭄을 마감하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던 지난 12일. 경기도 평택시 원정리에 있는 수도사에선 갑자기 절 밖으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순도순 둘러앉아 만두를 빚던 스님과 보살들이 주지스님의 '옛날 이야기'에 그만 웃음을 터뜨린 것.

"스님들도 짓궂은 장난을 하시네요." 한 보살이 말했다.

"물론이지요. 출가를 했어도 어린 스님들은 세속의 젊은이와 크게 다를 게 없거든요."

주지 겸 한국전통사찰음식연구소 소장인 적문스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수행 중인 스님들이 세속 명절을 덩달아 즐길 순 없지요. 그러나 스님들도 사람인 만큼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에 작은 동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노 스님이나 큰 스님이 나서 별식을 준비해 들뜨지 않도록 다독거려 줍니다. 만두는 그럴 때 만드는 별식입니다."

사찰 만두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단다. 세속에서 만들어 먹는 것을 흉내 낸 것인데 사찰음식에 쓰지 않는 오신채(파.마늘.달래.부추.무릇)를 빼고 고기 대용으로 표고버섯 등을 넣어 만든다고 한다.

"만두소에 들어가는 것이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노스님이 호두를 즐겨 드시면 호두도 넣고, 큰스님이 연자를 좋아하면 연자도 넣습니다. 사찰에서 만들어 먹는 만두가 큰 편인데 이는 스님들의 기호를 이리저리 챙기다보니 커진 겁니다."

만두는 요리전담 스님이나 보살만 빚는 게 아니란다. 큰 스님부터 동승까지 모두 모여 울력한다. 공동체 생활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불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문 스님은 만두피를 반죽할 때 백년초.치자.시금치.석이버섯으로 예쁘게 색을 낸다.

"사찰 음식도 색을 씁니다. 물론 합성색소를 쓰는 건 아니지요. 자연에서 얻어지는 재료를 쓰는데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사찰에서 쓰는 색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예를 들면 파란색은 부처님의 법을 구하고자하는 정근(精勤)의 마음을 담는데 시금치에서 색을 얻고, 빨간색은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정진(精進)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백년초로 색을 냅니다."

사찰에서는 고기를 쓸 수 없어 육수 대신 표고버섯.다시마.무 등으로 국물을 낸다. 특히 봄철 갈무리해 둔 참죽을 많이 쓰는데 독특한 맛이 난다고.

"참죽은 봄에 순이 났을 때 겉절이.장아찌.부각을 만들어 먹고, 줄기는 말렸다가 두고두고 국물을 낼 때 쓴답니다. 국물을 낼 때 들기름을 쓰면 색깔도 뽀얗게 됩니다. 국물에서 건진 표고버섯은 살짝 양념을 해 만두국에 올리면 훌륭한 고명이 됩니다."

적문 스님은 만두 이외에도 설을 전후로 해 사찰에서 즐겨먹는 건강식으로 연자밥.녹두빈자병.삼색떡꼬치를 소개해 주었다.

글=유지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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