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남북 정상회담 D-14] 충돌하는 남북 '체제 정통성' 이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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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4일 평양 백화원초대소의 만찬장. 1차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의 임동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귓속말을 나누는 장면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시청자들은 북한의 통치자와 북한 간첩을 잡는 국정원장이 나눈 귓속말을 궁금해했다. 궁금증은 6년 뒤 임 원장의 회고로 풀렸다. 김 위원장의 발언 내용은 이랬다고 한다. "당신이 이겼어요. 방문 안 해도 좋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북한의 '성지' 금수산기념궁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김 위원장은 그전까지 김 대통령에게 금수산궁전을 참배해 달라고 막후에서 집요하게 요청했었다.

금수산궁전 참배 방문 문제는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관련돼 있다. 남북한의 체제 정통성과 직결된 사안이다. 2007년 8.28 평양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은 협상의 공식 의제는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금수산 참배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 요구는 정상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체제 정통성과 관련된 다른 쟁점으로도 ▶연방제 등 통일방안 문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국가보안법 철폐 요구 ▶한.미 합동훈련 중단 문제 등 '지뢰밭 의제'들이 널려 있다.

◆참배 문제=2000년 당시 남측은 북측의 요구에 대해 "참배 행위는 남북 관계 발전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추후에 검토하자"고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시기상조론'을 내세운 것이다. 북측은 그러나 2005년 8.15 공동행사를 위해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서울 동작동)을 참배한 이후 '참관지 제한 철폐'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양무진 교수는 "한국전쟁이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라며 "이로 인해 극심한 남남 분열이 빚어진다면 북한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했다.

◆남북 통일방안=정부 고위 당국자는 13일 "조국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기 위한 (정상 간에) 중대한 논의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차 정상회담 때 합의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6.15 공동선언문 제2항)를 진전시킬 논의가 진행되느냐"는 질문을 받고서였다. 이럴 경우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설전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1차 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합제를, 김 위원장은 연방제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때문에 회담이 무산될 뻔한 위기가 4~5차례나 있었다는 게 당시 회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북측은 이번에도 더 진전된 통일 방안에 합의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연방제 공동협의기구와 같은 구체적 이행 틀에 대한 섣부른 합의보다 원론적.포괄적 수준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문제=국가보안법 폐지 요구 역시 남남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파괴력 있는 사안이다. 이는 1차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노동당 규약 철폐와의 상호주의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NLL 문제=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13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 "정상회담 의제에 NLL 문제가 포함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미리 의제를 이야기하면 정상회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만큼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그러나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 발언과 관련해선 "실효적 지배권을 갖고 있고 사실상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NLL은 안보 개념이 아니라 영토 주권 개념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예영준.이가영 기자

◆금수산기념궁전=평양의 김일성 주석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350만㎡의 면적에 3층짜리 화강암 건물로 세워졌으며 김 주석 사후 1년여간 보수했다. 북한은 외국 대표단의 평양 방문 때 늘 이곳의 참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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