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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신용이 은행 문턱 낮춘다(금리자유화시대: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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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기업 당당히 낮은금리 요구/중기는 이자에 꺾기부담 가중
예년같으면 연말에 쓸돈을 미리 구하느라 은행 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녔을 기업의 자금팀들이 요즘은 이상하리만큼 한가하다.
특히 대기업들은 돈이 필요하면 그때 가서 빌려도 된다는 식이다. 불과 1년6개월전만 해도 금액·금리·기간을 따지지 않고 돈을 끌어쓰던 「3불문」 시절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변해도 많이 변한 셈이다.
우선 대기업들은 2단계 금리자유화가 이뤄져도 손해볼 것이 별로 없다는 반응들이다.
『금리자유화이후 금리가 올라도 곧바로 기업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꺾기 등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치러야했던 비용을 공식적으로 지불하게 되므로 기업들로서는 금융실명제와 맞물려 오히려 경리처리가 쉬워지는 셈이다.』
○금융비용등 줄어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의 이같은 지적은 이번 금리자유화를 맞는 대기업들의 시각을 잘 말해주고 있다.
또 과거와 같이 당장 쓸 돈도 아니면서 무조건 빌리고 보자는 식의 가수요현상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금리가 어떻게 변할지 당분간 지켜보자는 자세인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줄어든 것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경우 당초 이달부터 연말 자금을 준비하려 했으나 한달정도 자금조달 시기를 늦추기로 했고,대우그룹도 금리자유화의 시나리오를 짜본 결과 타격입을 것이 없다는 판단아래 별다른 자금확보대책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기업과 은행의 역학관계가 크게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는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이 군림하는 자세였으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신용이 좋은 기업은 대출금리를 그야말로 「후려칠」 수도 있다. 재무구조가 튼튼하고 신용이 좋을수록 은행에 대한 협상력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삼성그룹은 금리자유화를 대비해 벌써부터 계열사 경영을 평가할 때 재무구조와 차입금의 수익성에 큰 비중을 두어왔다. 또 일부 대기업의 경우 은행들을 상대로 「금리입찰」을 붙이는 계획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 상대적 불리
이때 금리를 못내려주겠다는 은행과 거래선을 바꾸겠다는 기업의 「티격태격」 하는 모습이 금리자유화시대의 새로운 특징이 될 것이다. 물론 기업이 신용도를 높이고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코오롱상사 최용선 자금부장은 『금리가 자유화된 이상 앞으로는 은행의 요구대로 따라갈 수 없다』며 『금리비용을 철저히 따져 유리한 자금을 고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이들은 꺾기는 꺾기대로 살아나고 금리는 금리대로 올라 비용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은행이 신용등급을 매길 때 탄탄한 중소기업보다 재무구조가 나쁘더라도 이름난 대기업에 더 좋은 점수를 주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중소기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담보에 매달려온 은행들이 순수하게 신용평가에 의존해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며 『은행들이 오히려 대기업 대출로 줄어든 마진을 중소기업에 보상받으려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금리자유화와 관련해 기업들이 요구하는 보완대책도 많다.
우선 3단계로 잡혀있는 단기 수신금리와 자유화를 앞당겨 실시하고 정책금융을 과감히 줄여나가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은행이 잘돼야 기업도 유리하다는 계산에서 「기업이 은행을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해외자금 유입도
또 회사채에 대한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자기 신용으로 자금시장에서 직접 돈을 끌어쓰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금리상승을 막기 위해 발행물량을 제한하면 기업들은 결국 은행에 손을 벌리게 되는데 이때 은행자금이 마르고 금리가 오르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도에 자신있는 대기업들은 해외자금시장에서 돈을 들여오는 것도 풀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거운 금융비용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싼 자금을 이용해 원가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이진식이사는 『정부는 통화관리와 물가불안 때문에 기업의 해외자금 조달을 규제하고 있지만 들여오는 자금의 일정량을 국내에서 빚갚는데 쓰도록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남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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