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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집 장애인 4명 공동시집 방황이라는 단어지우기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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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나는 반짝이는 한 편의 詩가 되어/네가 잠든 머리 맡에서/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리라/행복한 웃음을 머금고/온갖 풀꽃들이지천으로 피어난/꿈 속의 들판을 거닐며/들국화 한 송이를 너의고운 머리칼에/꽂아주리라.』(전혜성의 「나는 한편 의 詩가 되고 싶다」中) 자고 나면 기온이 뚝뚝 떨어져 따스함이 유난히 그리워지는 계절,한 편의 詩가 되고픈 장애인들이 시집을 펴냈다.이동훈.전혜성.김지연.윤상필씨등 4명은 최근 4인공동시집『방황이라는 단어 지우기』(청년문화사刊)를 출간했다.
이들은 소아마비 등으로 하반신을 제대로 못쓰며 서울성동구마장동 대한적십자사 건너편에 불법으로 천막을 친「시온의 집」에서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다.10여년전부터 가난한 살림에 눈치만 보다 나이들어 집을 나온 장애자들이 꾸민 이 집에 서는 평균 20명 가량의 식구들이 행상과 종교단체의 지원등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중 몇명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90년 여름 시인김현파씨를 만나면서부터.한여름 지글지글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서로를 의지하며 면양말을 팔고 있는 이들을 본 김씨는 그후 한주 한차례씩 시온의 집을 찾아 시를 지도했다.
장마철 소나기가 쏟아질 때면 천장 곳곳에서 칼국수 가락만한 빗줄기가 줄줄 새고 추운 겨울에는 베니어 방바닥위에 고통스런 육신을 깔고 딱딱 이를 부닥치며 시온의 집에서 3년여 갈고닦은시들이 한권의 시집으로 엮어져나와 우리에게 시와 사랑과 희망을건네주고 있다.
『야윈 등줄기 골수 짜내 기름 삼고/심장에 연결된 동맥 뽑아심지 삼고/희미해져만가는/희망의/사랑의 등불을 켜야겠다.』 심한 하반신 소아마비로 시달리면서도 시온의 집 살림을 도맡고 있는 이동훈씨(34)의 표제시 일부다.육신의 고통과 그 고통을 뚫고 솟구친 사랑의 절실함이 기성시인과 건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우리는/왜 사랑해야 하나요/자신만이 아닌 외로운 사람들을/우리는/왜 사랑해야 하나요/연인만이 아닌 아픈 사람들을/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하나요/가족만이 아닌 슬픈 사람들을.』 10여년전에 걸린 전신관절염을 제때 치료하지못하고 고통스런 몸을 끌고 다니는 24세 처녀 전혜성씨의 시「우리 모두」일부다.가정과 사회가 버린 불구의 몸이「우리는 왜 사랑해야 하나요」하고 되풀이 묻고 있다.사랑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물어 사랑의 의미를 캐고 의미 있는 사랑을 남들에게 보내겠다는 것이 이 시다.
이들의 천국인 시온의 집은 이달말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철거하겠다는 당국의 통보를 받고 있다.모든 것들이 스러져만가는 춥고 허전한 계절,육신의 고통을 뚫고 올라온 이들의 詩心이 우리 마음을 따습게 채우며 한편으론 부끄럽게 하고 있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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