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무공훈장이 설땅없는 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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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故人은 명예를 생명으로 여기는 장교출신에다 보통사람 같으면하나도 받기 어려운 훈장.표창을 네차례나 받았습니다.생활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그런 분이 오죽했으면 자살을 택했겠습니까.
』 23일 오후7시쯤 서울구로구대림동 한독병원 영안실.
하루전 목매 숨진채 발견된 예비역 육군대령 林相喆씨(70)의빈소를 지키고 있던 동료.선후배들은 故人을 죽음에 이르게한「현실」부터 개탄했다.
『해방후 좌익이니 우익이니 해서 나라꼴이 어땠습니까.6.25때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 난리통에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뛰어들어 나름대로 공을 세워 훈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林씨도 그런 사람중 하나로 정부가 수립되던 48년 陸士8기 특별과정을 거쳐 육군중위로 임관했다.
육군공병학교 전술교관으로 근무중 6.25를 맞은 林씨는 곧 전선에 투입돼 양구.금화지구 전투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 53년6월 화랑무공훈장,이듬해 6월에는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분은 자신과 같은 무공수훈자들이 다른 전몰유가족이나 상이군경에 비해 아무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지요.』 그는 78년 반공봉사단체인 팔각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부터 3만8천여 무공수훈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최소한 전몰유가족이나 상이군경처럼자녀교육비.수당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없다,지원근거가 없다는등 이유로 번번이 벽에 부닥쳤고 아들뻘밖에 안되는 공무원들은『생활도 어렵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돈 돈 하느냐』는 핀잔을 하기 일쑤였다.
무공수훈자회 부산지회장 吳在鉉씨(60)는『지금도 故人의 죽음을 돈때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며『유서내용대로 피끓는 젊음을 바쳐 조국을 지킨 우리가 바로 그 조국에서 존재조차 잊혀지고 있을 정도로 홀대받고 있 는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鄭泰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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