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의 배역시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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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송위원회에 대한 국회 문공위 감사가 열렸다. 한 야당 국회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덕화라는 연예인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야당후보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는 등 장애인을 우롱하는 짓을 저질렀는데 어째서 이런 연예인을 계속 방송에 출연시키느냐고 호통쳤다. 이런 연예인은 당연히 방송출연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일과성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음날 KBS에 대한 국감에서 이씨가 타이틀 롤을 맡은 『한명회』라는 연속 드라마를 상대로 야당의원들은 출연료가 너무 많다,제작의도가 무엇이냐,방송횟수가 너무 길지 않느냐는 등 시시콜콜한 지적을 계속했다고 한다.
감사를 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나 이를 지켜보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왜 야당의원들이 이토록 집요하게 한 연예인을 물고 늘어지는지 납득할 수 없다. 이번 국정감사는 의원들의 치밀한 사전준비와 진지한 감사자세로 어떤 국감보다 성의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마당에 한 연예인에게 보이는 야당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은 어찌된 일인가.
국정감사란 어디까지나 국민의 입장을 대신한 공익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운영의 잘잘못을 따져야 마땅할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지난 대선에서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근거로 한 연예인의 방송출연 문제와 드라마 내용에까지 국감이 시비를 붙여야 하는지,도무지 명분도 체통도 서지않는 일로 보일 뿐이다.
그 연예인이 지난 선거유세에서 야당후보의 걸음걸이를 실제로 흉내냈다고 한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고 국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시비가 가려졌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마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를 기화로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다른 장소도 아닌 국감에서 문제삼는다면 이는 바로 사감으로 공무를 처리하는 빙공영사의 선례가 될뿐이다.
5공시절에도 연예인들이 야당후보의 찬조연설원이 되어 활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후 바로 그 활약 때문에 연예인으로의 숱한 불이익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 이제 그 권위주의시대가 가고 문민시대가 된 지금,그것도 여당이 아닌 야당의원들 때문에 한 연예인이 피해를 본다면 이는 더더욱 말도 안되는 시대착오적인 사건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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