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국회서 실미도 폭로후 계엄군에 끌려가 고문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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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실미도 사건 당시는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였습니다. 국회에서도 군(軍)과 관련한 민감한 발언은 금기였지요. 그런 상황에서 대정부 질문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추궁하자 국회는 벌집 쑤신 듯 들끓었습니다."

영화 '실미도' 돌풍을 지켜보는 강근호(姜根鎬.70) 전북 군산시장은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폭로했던 1971년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었다. 그해 37세였던 姜시장은 5월 총선에 야당인 신민당 후보(군산.옥구)로 나서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그는 그해 9월 15일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8.23 난동사건'이라고 불렸던 실미도 사건의 실체를 추궁했다.

당시 많은 국회의원들은 이 사건의 윤곽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패기만만한 초선의원이었던 姜시장이 실미도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의 실체를 따져 묻자 일순간 국회 의사당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姜시장은 ▶실미도 부대의 목적 ▶예산 및 지휘 체계 ▶정치적 테러와의 연관성 등 사건의 실체를 하나하나 따져 물었다. 다음날 김종필 국무총리는 이 사건의 주동자들이 군 특수부대 요원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듬해인 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직후 姜시장은 계엄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국군보안사령부(기무사령부의 전신) 서빙고 분실에서 전기 고문을 받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진 姜시장은 지금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군산=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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