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대비 3중 안전장치(실명제 무엇이 다른가/현장취재: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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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주의는 없다/위험 예상땐 입출항 금지/대형 인재발생 원천 예방
안전에 관한한 선진국들의 사전에 「적당주의」란 없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안전의식의 관행들을 엄격한 기준·규칙·제도로 묶고 「만의 하나」에 대비한 신속한 기동체제와 장비의 투자로 이루어진 3중 안전 자물쇠의 뒷받침 때문이다.
싱가포르 해협이었다면 불가항력의 재해가 아닌한 위도 참사와 같은 원시적인 대형 선박 침몰사고는 상상할 수 없다.
싱가포르 항만국 항로관제실은 흡사 공항의 항공관제실을 연상케 한다. 항로관제사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한 입·출항을 통제하는 것은 기본이고 운항중인 선박들도 베독·세인트 존스섬·호스버그·술탄 숄·라플 등대에 설치된 레이다망을 통해 한척한척 입체적으로 표시되는 모니터로 손바닥 들여다보듯 감시하고 있다. 위험경고·기상예보는 자동응답기에 의해 항해중인 선박에 제공되고 컴퓨터 수로시스팀은 끊임없이 해저를 추적하고 준설상황을 입력,안전항로를 위한 해양교통정보로 이용하고 있다. 연간 싱가포르항에 입항하거나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중 수로안내(pilot)를 받은 선박이 9만5백척. 예인(tug)을 의뢰한 경우 94% 이상이 15분이내에 예인선이 배치됐다. 사고에 대비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해상·항공사고는 해공 합동수색·구조작전이 필수적인 만큼 정확한 사고지점 파악과 긴급출동을 위해 지난해부터 가동되는 위성시스팀을 향상시키는데 투자한 액수만도 3백20만 싱가포르달러(약16억원). 일단 사고가 나면 그 피해는 투자액의 몇배 또는 몇십배나 되고 사고로 인한 이미지 손상은 금액으로 따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래 위 모두가 함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어느 지방신문이든 시정판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단골 메뉴중의 하나가 「분기별 비상차량 및 경찰차량 출동보고서」. 지방자치 행정구역별로 앰뷸런스·소방차·경찰차가 신고를 받고 몇분만에 도착했는가를 분석한 내용이다.
◎학교버스 정지하면 모든차 스톱/전화단선 노약자 있는 집은 유예/미/어린이 길 건널때 차달리면 망신/독
경쟁을 통해 위급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높이겠다는 의도지만 만일 보고서에 꼴찌로 기록됐다면 해당 자치단체장은 각고의 분발이 없는한 다음 선거에서 재선을 기대하기 힘들다. 공무원들도 「긴급상황에 출동도 늦으면서 무슨 염치로 월급 인상을 바라느냐」는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하고 실제로 임금 인상액도 깎이게 된다.
『인명 안전에 관한한 미국은 좀 심각하다고 생각될 정도예요. 아닌 밤중에 홍두께 격으로 경찰이 들이닥쳐 법정까지 연행돼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무슨 사연인가 알아보았더니 반대차선에 학교버스가 정차해 있는데 정지하지 않고 지나갔다는 겁니다. 그것도 6차선 큰길에서 말입니다.』
긴장한 탓에 더듬거리는 영어로 간신히 벌금을 물고 법정에 나온 한국인 유학생 최정연씨(24·뉴저지주 노루우드 거주)는 그 후론 멀리서라도 학교버스만 보면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아예 지나갈 때까지 엔진을 꺼버린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사고때 출입문에 열리지 않아 탈출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상해 어떤 교통수단이든 내부에 창문을 깰수 있는 망치를 비치하도록 규정할 만큼 세밀한 미국의 교통안전 규정에 있어 어린이 보호는 최우선의 원칙인 것이다.
자전거를 탈때는 헬밋을 쓰는 것이 의무화돼 있고 아무리 작은 주택이라고 연기감지기 설치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미국의 안전규정들. 안전에 연관되는 일이라면 매정하게 맺고 끊는 미국식 자본주의 원리도 예외가 적용된다.
지역별로 민영화돼 있는 전화회사에서 전화료 미납으로 단선할 때도 미납자가 가족 중 병자·어린이·노약자가 있다고 통보만하면 2주∼한달간 단선을 유예하고 유예기간이 지나 단선하더라도 일반통화가 안될뿐 긴급전화는 걸 수 있도록 회선을 열어 놓는다. 이같은 원칙은 가스·전기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공급을 중지할 수 없는 것이 난방. 난방비를 제때 내지 않았다고 난방을 중지했다가는 「동사 방조」 정도의 엄청난 죄명으로 형사처벌을 받게된다.
몇해전 김포공항에서 있었던 한 사례는 미국인의 안전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착륙을 위해 접근중인 NWA소속 점보기에 김포접근관제소는 착륙허가를 내렸다. 당시 김포상공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으나 시계 8백m로 공항 착륙기준 이상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NWA기장은 『동경으로 회항하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는 관제소의 물음에 『내가 착륙할 수 있는 시계제한은 1.2㎞』라는 응답이었다. 당연+ 원칙의 적용이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원칙에 충실한가』라는 자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빨리빨리」와 「설마」의 적당주의가 낳은 참사의 사례들. 원칙에만 충실했던들 66명의 희생자를 낸 아시아나항공 목포공항 인근산 충돌사고도 마땅히 피할수 있는 참사였다.
선진국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사회의 안전의식이라는 것은 유럽에서도 확인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어린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면 통학길에 의무적으로 노란색 모자를 쓰도록 한다. 차량들이 노란색 모자만 눈에 띄면 정지하고 길을 건널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다.
『간단한 일인 것 같지만 어린 학생들이 길을 건너려는 것을 보고 그대로 지나쳐보십시요. 주위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비난하고 본인 스스로도 비양심적인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게 됩니다. 정지해 있는 시간이 한번쯤 교통안전을 추스르는 기회도 되고요.』
이곳에서 15년을 살았다는 재독교포 석진만씨는 『독일의 아우토반(고속도로)엔 속도제한이 없는 만큼 어느 민족보다 스피드를 즐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통안전 의식은 책임과 의무로 정확히 지키는 사람들이 독일인이라고 말했다.
◎집앞 눈 안쓸어 행인 미끄러져도 책임/마당 잔디 안깎으면 “마을슬럽화” 벌금/「살벌」한 미 안전규칙
미국에서 단독주택에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겨울철 집앞에 눈이 쌓이기 무섭게 쓸어내야 하고 여름철에서 수시로 잔디를 깎아야 한다.
미국 사람들이 대단한 시민의식 또는 공중도덕심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눈을 치우지 않았다가 집앞을 지나던 통행인이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하면 손재수도 이만저만 아니다.
보통 손해배상청구액이 50만∼1백만달러(한화 약 4∼8억원). 그러나 피해자가 성인이고 골절상을 입었을 경우 통상 2만∼3만달러(한화 1천6백만∼2천4백만) 정도의 법원 보상판결이 내려진다. 피해자가 어린이일 경우에는 보상액이 5만달러(한화 약 4천만원)선으로 올라간다. 신체적으로 미숙한 유아를 사회가 보호해야할 책임몫이 더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단독주택을 갖게되면 필수적으로 주택종합보험에 가입해야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종합보험에 선택사양이 있듯 타인에 대한 상해보험 부분은 선택할 수 있지만 웬만큼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잔돈 아끼려다 큰 돈 잃는다」는 보험 세일즈맨의 권유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고 게으르면 동네아이들에게 아르바이트라도 시켜 말끔히 깎아야 하는 정원잔디도 「배보다 더 큰 배꼽」의 벌금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성하게 잔디가 자라도록 방치해두면 우선 마을위원회에서 경고장을 받게되고 이를 무시했다가는 경찰(House Police)에 신고돼 벌금이 부과된다. 부과이유는 마을을 슬럼화시켜 범죄를 부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엄주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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