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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두달중간평가>1.정착까지 아직도 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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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태어난지 이제 겨우 두 달 되어가는 금융실명제를 「假결산」할수 있는 항목들은 무엇일까.
일부 정부부처나 여론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실명전환 실적」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는 小항목일 뿐 「코끼리 다리 만지기」같은 실명제 평가를 위해 그다지 쓸만한 것이 못된다.
가명이 실명으로 바뀐 실적은 지난 7일 이미 70%(금액 기준)를 넘어섰고 전체 규모조차 파악이 안되는 借名 자산이 문제이긴 해도 어차피「차명은 문제삼을 수도 없고,또 문제 삼지도 않겠다」는 것이 現 실명제의 골격이기 때문이다.
차명을 통한 금융자산 감추기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역시 금융자산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다.
그러나 現 실명제는 이를 96년으로 미뤄놓았다.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실명제가 82년의 실명제에 비해「경제정의(종합과세)면에서는 후퇴요,정치정의(과거 묻기)면에서는 진보다」라며 비판半,비아냥半의 평가를 해왔던 터다.
따라서 이래 저래 차명 문제는 이번 실명제의 주요 평가 항목에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 5년,10년을 두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실명제 평가 항목은 기업을 평가할 때와 마찬가지로「재무구조」「성장성」이라 할 수 있다.이 경우 아직까지는 실명제에대해 좋은 점수를 줄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우선 나라 살림의 얼개부터가 문제다.
실명제 이전의 당초 新경제 구상대로 내년에 7.1% 실질 성장(물가 상승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경제성장)을 예상하고 예산을짜놓은 당국은 최근 돌파구를 하나 찾아냈다.
실명제로 내년 실질 성장이 떨어지더라도 물가는 오를 것이니 물가를 감안한 경상 성장에 따라 거두게 되는 세금과 이를 바탕으로한 나라 살림은 별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을 전공한 많은 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실명제 실시 바로 다음 해에 물가는 올해보다 더 오르는데 그같은「거품 외형」에 얹히는 세금이 여전히 무겁다면 원론적인 조세저항은 제쳐두고라도『실명제로 얻은 게 무어냐』는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 스스로가 이같은 민간쪽의 어려움을 재정의 돌파구(?)로 받아들이면서 기존 재정의 틀을 움켜쥔 채 실명제가 잘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실명제가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사회 정의에 역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실명제의 앞날을 좌우할 평가기준의 하나다.
최근 經實聯 토론회에서 中央大 河晟奎교수는 실명제가 단기적으로는 전.월세 물량을 줄이고 값을 올리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임대주택을 더 짓는등의 발빠른 정책 대응이 없으면 서민들에게 더 고통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단 주택문제만이 아니라 실명제로 인해 당장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영세상인이 더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실명제를 계기로 그간「개혁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부조직개편→금융개혁→실명제로 이어지는 手順이「계획성 있는」개혁이었음에도 실명제부터 실시되는 바람에 「일 벌인사람」보다「일 수습하는 사람」이 몇배나 어려운 일을 떠맡게 됐다는 것이다.
실명제이후 뭉치로 풀린채 느릿느릿 돌고 있는 시중통화는 마치잠재적인 폭탄과 같다.올들어 지난 8월12일까지 늘어났던 현금통화가 모두 1천7백7억원이었던 반면 실명제 이후 지난7일까지새로 풀린 현금은 자그마치 2조3천1백40억원 이었다.
이만한 현금을 풀었는데 금리가 뚝 떨어지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제자리 지키고 있다고 내세울 입장은 못된다.또 비단 통화론자가 아니더라도 돈도는 속도가 정상으로 돌아갈 때 돈을 거둬들이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다 짐작 할 수 있는일이다. 실명제 실시는 정치적 판단이지만 실명제 정착은 철저하게 경제논리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실명제 두달의 「가결산」도 따라서 실명제 정착을 위한 경제 논리가 현재 얼마나 먹혀들고 있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金秀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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