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실안 승객 대부분 참변/부안 앞바다 여객선 침몰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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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9㎞ 8시간 헤엄쳐 구사일생도/교통부 “최악의 해” 허탈/정확한 승선자수 혼선
○“비상근무도 헛수고”
○…지난 3월 부산 구포열차사고와 7월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등 대형사고를 경험한 교통부는 이번에 대형선박사고가 일어나자 올해가 「육상·항공·해상」 사고가 두루 일어난 최악의 해라며 수군수군. 특히 여름철 해상사고를 막기 위해 교통부가 비상근무해 벌탈없이 지나가 안도하고 있었으나 뒤늦게 전혀 뜻하지 않은 여객선 사고가 발생하자 『고사라도 지내야 할 판』이라며 망연자실.
○갑판승객 대부분 무사
○…서해 페리호사고는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나 객실에 있던 승객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대부분 사망하고 갑판에 나와 있던 승객들의 상당수는 구조되는 등 희비가 교차.
갑판위에 서있던 구조된 이동영씨(29·전주시 덕진구 동산동)는 『배가 기우는 순간 곧 바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배에서 떨어진 아이스박스를 붙잡고 있다 구조됐다』고 말했다.
○파고 높아 발만 “동동”
○…전남 부안군 위도면 식도주민들은 지난 7월26일 전남 해남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때 보여준 마천부락 주민들처럼 스스로 여객들 구조작업에 나서 눈길. 이 마을 이장 신기우씨(34) 등 주민 60가구 2백여명은 1㎞쯤 떨어진 해상에서 여객선이 가라앉는 것을 목격,「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긴급히 어선들을 띄우고 구조에 착수. 그러나 파고가 워낙 높아 현장접근이 어렵자 물에 빠진 승객들이 물결따라 흘려내려올 것으로 짐작,물목을 지키다가 유봉환씨(36) 등 6명을 살려내고 19구의 시체를 인양.
○선실 유리창 깨고 나와
○…서해페리호 사고직후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김영수씨(38·충북 청주시)가 사고발생 8시간만인 10일 오후 5시30분쯤 구명조끼를 입고 사고해역에서 9㎞가량 떨어진 격포항으로 헤엄쳐 나와 목숨을 건졌다.
김씨는 『선실에 있던 구명조끼를 꺼내 입은뒤 유리창을 깨고 선실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승선자 3백명 주장도
○…침몰한 서해 페리호에 승선한 사람들의 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해운항만청에 따르면 사고직후 현지 관계자들의 추정으로 「2백여명」이라는 숫자가 처음으로 나왔고 이어 11시쯤 현지 해경에 의해 정원 2백7명을 조금 넘은 2백12명이라는 숫자가 공식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해경측은 오후 3시 현재 구조자수(68명)와 인양사체 39구와 현지 수색활동 상황 등을 종합,승선자가 1백40명이라고 수정 보고했다.
그러나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한 구조자들의 『서울등지에서 단체로 내려온 낚시여행자들로부터 선체안은 매우 붐볐다』는 증언이 나왔고,저녁때부터 승객만 있다면 정원에 관계없이 승객을 태우는 여객선들의 악습을 감안해 2백50∼30백명이라는 추정까지 나왔다.
○면장등 육지나가 눈총
○…부안군 위도 면사무소는 사고당일 면장을 포함한 직원들 대부분이 육지에 나와있어 일손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주민들은 면직원이 주말과 공휴일에는 임지를 비우는 일이 허다하다고 비난하고 오 면장 등은 10일 군청에서 대기하다 유족 등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유가족 뜬눈으로 밤새
○…부안군청에는 실종자 유가족 3백여명이 군수실과 재해대책본부 등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초조하게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다 일부 유가족들은 병원을 돌며 밤새 생사를 확인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채 돌아와 탈진상태로 바닥에 드러눕기도.<특별취재반>
◎여객선침몰 생존자 이한철씨/배기울자 물에 뛰어들어 “허우적”/구명보트 탄 승객 붙잡고 살아나
『집채만한 파도더미가 덮치면서 배가 뱃머리를 위도쪽으로 돌리는 순간 선체가 크게 기울면서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갑판위에 나와 있던 저는 반사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내렸지요.』
낚시회 회원 1명과 함께 위도로 낚시하러 갔다 사고를 만나 위도 주민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돼 목숨을 건진 이한철씨(50·택시기사·청주시 봉명동)는 사고순간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듯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10일 새벽 5시 위도에 도착했던 이씨 일행이 낚시를 포기하고 벌금항에서 서해페리호를 탄 것은 오전 9시10분.
정원 2백7명을 훨씬 넘어 발디딜틈 없이 복잡한 선실을 피해 이씨를 비롯한 1백여명의 승객들은 갑판위에 있었다.
『격포항쪽으로 30분쯤 항해했을 무렵 큰 파도를 만나 배가 60도쯤 기울었어요. 바닷물이 넘쳐들어 오고 배가 균형을 잃자 승객들이 한쪽으로 내동댕이 쳐지면서 선실안은 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갑판위에 동료 낚시회원들과 함께 바다를 내려다 보며 낚시를 못한 아쉬움을 달래던 이씨는 더 이상 상황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니 배난간이 보이더군요. 사력을 다해 붙잡았지만 이미 배가 뒤집혀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중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을 삼킬듯 몰아치는 파도와 씨름하던 이씨는 몇차례 물에 잠겼다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기진맥진해서 「이제 꼼짝없이 고기밥이 되는가보다」고 생각하는 순간 물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여 기를 쓰고 붙잡아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30여명의 승객들이 배가 뒤집히면서 퉁겨나온 길이 3∼4m 가량의 구명보트에 매달려 있더군요.』
이씨가 물속에서 붙잡았던 것은 구명보트에 의지해 구조를 기다리던 다른 승객의 다리였다.
사고후 20여분이 지났을 무렵 무선으로 사고소식을 접한 낚싯배 「종국호」가 위도쪽에서 다가왔고 이씨는 차례를 기다리다 배에서 내려주는 밧줄을 타고 구조됐다.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 가까스로 「이승」으로 되돌아온 순간이었다.<부안=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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