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韓相範)는 14일 張선생 의문사 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중앙정보부 문서 등을 공개했다. 張선생은 박정희(朴正熙)정권 시절 비판적 월간지 '사상계'를 발행하는 등 1960~70년대에 반독재 투쟁을 하다 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새 사실들=사건 당일 오후 1시쯤 張선생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 "張선생이 산에서 다쳤다"고 張선생의 집에 연락한 인물은 張선생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張선생의 사망시간을 오후 2시40분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 '괴전화'의 정체가 의혹의 초점이 돼 왔다. 이번에 공개된 중정의 사건 당일 '중요상황 보고서'에는 전화를 건 사람이 金모(69)씨라고 실명으로 기록돼 있었다.
67년 張선생의 선거운동을 도와 인연을 맺은 金씨는 당시 張선생이 일행을 빠져나와 약사봉으로 갈 때 혼자 수행하고 사고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처음 알려 의문사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인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해 金씨는 "중정이 조작한 자료"라며 전화를 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張선생의 시신 사진도 새로 공개됐다. 의사 3명이 검시 중 찍은 것으로 오른쪽 뒷머리에 면봉이 들어갈 만한 크기로 함몰된 상처가 나 있었다. 또 엉덩이 쪽에 세곳, 오른쪽 팔에 한곳 등 주사바늘 구멍으로 보이는 상흔도 발견됐다. 의문사위는 이 사진들을 국내외 전문기관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으며 그 결과는 오는 3월께 나올 예정이다.
◇추가 자료 확보가 관건=의문사위는 張선생의 사망 당일 중정이 작성한 한 장의 보고서를 확보했지만 더 이상의 자료 확보에는 실패했다. 의문사위는 중정이 그해 3월 말부터 張선생을 근접 감시하며 전화도청 등을 계획한 보고서를 입수, 사건 당일에도 더 많은 보고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국정원 측은 자료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또 사건 다음날인 18일 당시 보안사령관 진모씨가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 이례적으로 50여분간 독대를 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으나 기무사로부터 추가 자료 입수에는 실패했다고 의문사위는 밝혔다.
배노필 기자